[4.3 기획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② 대전형무소.. 그리고 죽음의 골령골

제주방송 김동은 2023. 3. 2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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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을 통해 제주 중산간과 한라산 일대에서 죽음의 토벌을 피했던 피난민들의 실태를 전해드렸습니다.

이 피난민 가운데 검거된 사람들은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다른 지역 형무소로 끌려가 지옥 같은 수형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한국전쟁 초기, 형무소 등에서 숨진 4·3 수형인 상당수는 무차별 토벌을 피해 중산간 지역의 궤나 굴 속에 숨어 지냈던 민간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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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27) 이 시간을 통해 제주 중산간과 한라산 일대에서 죽음의 토벌을 피했던 피난민들의 실태를 전해드렸습니다.

이 피난민 가운데 검거된 사람들은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다른 지역 형무소로 끌려가 지옥 같은 수형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김동은 기잡니다.

(리포트)
지금은 너무도 평온해 보이는 한적한 산골짜기.

곳곳에 무덤처럼 흙이 쌓여 있습니다.

지난 2007년 이후 5차례 진행된 유해 발굴로 이 곳에서만 1천 4백구가 넘는 유해가 나왔습니다.

한국전쟁 초기인 지난 1950년 6월 28일부터 이 곳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이 이뤄졌습니다.

희생자는 최소 1천 8백명에서 최대 7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암매장 구덩이를 모두 연결하면 1천 미터에 달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김종현 / 전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유족회장
"(인근 하천으로) 유골이 허옇게 쌓였다는 거야, 그 당시만 해도 빨갱이들 죽은 것은 개, 돼지 죽은 것 만큼 취급도 안해줬으니까, 사람으로 취득하지도 않았고..."

정치범들을 사전에 정리한다는 이유로, 대전형무소 수감자가 주된 학살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4·3 당시 7년형을 선고받고 잡혀간 수형인 3백명이 포함돼 있었지만, 단 한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옥 같았던 형무소 생활이 참혹한 죽음으로 끝나버린 겁니다.

김동은 기자
"제주 4·3 수형인을 포함해 민간인 대규모 학살이 이뤄진 이곳 대전 골령골에서는 일부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지긴 했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 작업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김종현 / 전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유족회장
"국가가 좀 더 (자료들을) 개방해서 다 털고 가야 될 것 아닙니까...종합해서 역사를 바로 잡지 않는 한은 진실 규명이라는게 영원히 요원할 것 같아요"

이처럼 한국전쟁 초기, 형무소 등에서 숨진 4·3 수형인 상당수는 무차별 토벌을 피해 중산간 지역의 궤나 굴 속에 숨어 지냈던 민간인들이었습니다.

2회 군법회의 수형인들의 직업을 보면, 1회 때와 비교해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3배 가까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됩니다.

중산간 일대에서 농사를 짓던 주민들이 초토화 작전을 피해 입산했다가 붙잡혔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중산간에서 말을 키우다 잡혀가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던 아버지는 엽서 한 장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황기홍 / 대전형무소 4·3 수형인 희생자 유족
"제일 바람이 진짜 유골을 찾아서 가족 묘지에 모시고 싶은 마음이 정말 하늘에 부탁, 부탁합니다. 제일 소원입니다"

제주 중산간에서 시작된 초토화 작전의 광풍은 전국 형무소와 학살터 곳곳에 4·3의 아픔과 비극으로 서려 있습니다.

JIBS 김동은입니다.

영상취재 윤인수

JIBS 제주방송 김동은(kdeun2000@hanmail.net) 윤인수(kyuros@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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