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얼굴을 화폭에 담는 이유

전하연 작가 2023. 3. 2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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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

서현아 앵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얼굴 10년째 화폭에 담고 있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상당수엔 눈이 그려져 있지 않다고 하는데요.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뉴스브릿지에서 들어봅니다. 


주환선 작가님, 스튜디오에 자리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먼저 시청자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독립운동가 작가 주환선입니다. 


저는 주로 초상화나 일러스트를 작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서현아 앵커 

작가님께서는 10년째 독립운동가의 초상화를 그리고 계시는데요. 


그동안 어떤 작품들을 그리셨습니까?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지금까지 유화로는 스무 분, 스물다섯 분 정도 그렸는데요. 


그리고 일러스트로는 130, 140분 정도를 작업했습니다. 


아무래도 유화는 반추상화로 제 감정 위주의 작업을 하다 보니 백범 김구 선생님이나 안창호 선생님, 안중근 선생님과 같이 많이 알려진 분들 위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러스트는 조금 더 빠르고 사실을 전하는 데 목표가 있어서 알려지지 않은 분들 위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동안 독립운동가 160여 분의 얼굴을 화폭에 담아오신 건데요. 


혹시 작업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을까요?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아무래도 독립운동가분들의 마지막 모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그런 감정들이 모여서 저의 컬러나 터치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서현아 앵커 

이 초상화를 통해서 독립운동가들의 삶 그 자체를 담아내신다는 평가를 받고 계시는데요. 


그렇다면 처음에 이런 초상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초상화 작업을 할 때 이제 스케치나 크로키를 할 때 모델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때마침 티비에서 나오는 독립운동가 다큐멘터리를 보고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한번 그려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념관이나 추모 시설에만 걸려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이제 일상에서 작가들의 전시나 갤러리로 끌어들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으로 그리신 게 안중근 의사의 초상화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포함해서 특히 이 유화로 그린 초상화 30점에는 눈을 그리지 않으셨다고요?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흔히 이제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보통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모든 느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눈의 완성인데요. 


저 같은 경우는 초상화 작업을 할 때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서 완성도를 올립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독립운동가분들의 눈을 묘사할 때 붓이 헛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헛도는 느낌을 명확히 표현해야 하는 부분들을 터치를 하지 못하고 그 주변만 계속 터치를 하는 건데요. 


그리고 며칠 동안 진도가 안 나가서 그때 생각에 이게 일반적으로 모두 느끼는 감정이겠구나, 저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사를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면 독립운동가분들에게 이런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는구나라고 느껴서 눈을 그리지 못한 채 뭉그러뜨리는 느낌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럼 이렇게 눈이 없는 초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이게 보통 조금 신기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두 작품만 눈이 안 그려진 게 아니라 모든 작품에 눈이 없으니까 전시장 한가운데 관람자가 있으면 아마도 기분이 으스스하기도 하고 신기해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어떤 이 부끄러운 감정과 슬픔이 눈을 그리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건데 그렇다면 이런 초상화를 보고 관람객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시나요?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이렇게 제가 초기 작업을 할 때는 관람하시는 분들이 좀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최근 작업을 하면서 조금은 생각이 바뀐 게 한 번만이라도 더 독립운동가 분들을 기억할 수 있게, 이게 물론 매일 슬픈 마음으로 애도를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이런 특별한 날 만큼이라도 한 번이라도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서현아 앵커 

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은 어떤 작품이에요?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물론 모든 독립운동가분들을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특히 구파 백정기 의사가 가장 기억에 남고 또 제 작품으로도 저의 눈에 딱 걸리는 작품인데요. 


정말 부끄럽지만 구파 선생님의 작업을 하기 전에는 저도 누군지 몰랐습니다.


효창공원 삼의사의 묘 중 한 분이 구파 백정기 선생님이라는 것도 몰랐거든요. 


그게 아마 교과서에서나 일상에서 많이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아나키스트 계열 독립운동가분이라서 많은 주요 독립운동가분들처럼 알려지지 않게 된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서현아 앵커 

네, 그렇군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분들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사진이나 문헌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독립운동가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작업을 어떻게 하십니까?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그럴 때는 이제 보통 블로그나 유튜브 또 다큐멘터리를 가장 많이 이용합니다. 


또 제가 팔로우하는 제 친구로 되어 있는 사학자분들이나 사회문화부 기자분들의 글이나 멘트를 보고 따로 제가 찾기도 하고 가끔은 여쭤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근데 사진 없는 분들까지는 진도가 나아가지 못해서 곤란한 적은 없는데요. 


이제 또 해상도가 너무 낮거나 얼굴만 남아 계신 분들은 제가 포토샵으로 따로 작업을 해서 그림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렇게 공부한 자료들을 개인 블로그에 남기고 계시기도 한데요. 


독립운동가의 초상화를 그리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보람은 매일 느끼고요.


최근 들어 10년간의 저만의 기록이 조금씩 알려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묘하기도 하고 보람도 큽니다. 


힘든 일도 역시 매일 있거든요. 


아무래도 이제 저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그림으로 수익을 만들어야 되는데 독립운동가의 초상화는 판매로 잘 이어지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눈까지 그려지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전시도 특정 일이 아니면 갤러리를 찾는 게 쉽지가 않거든요.


아무래도 갤러리도 수익을 창출해야 되니까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전시를 특정일에 한다고 해도 그 기간만 지나가면 또 잊혀지거든요. 


그래서 뭐 대다수의 작가분들과 마찬가지로 금전적인 문제가 조금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이렇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작업을 해주신 덕분에 우리가 이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독립운동가들, 나아가서 우리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주환선 / 독립운동가 작가 

제가 이런 질문을 들으면 늘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 친할머니가 흥선대원군 때 사람이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는데요. 


아흔 살이 훌쩍 넘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45년생이시고요.


할머니 이야기만 들어도 벌써 조선시대 때의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할머니의 할머니 이야기는 못해도 이제 철종이나 헌종 때의 이야기였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나물이 조선 초, 중기 때 먹었던 것과 다를 게 없다면 많이 놀랍죠.


역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일도 역사가 되니까요. 


어머니 아버지의 추억은 이제 다들 소중하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그 부모님의 부모님, 조부모님의 조부모님의 추억과 기록이 이렇게 쭉 이어지는 게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소중해야 하고 기억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서현아 앵커 

이 아픈 역사와 그 속에서 희생하신 분들의 삶이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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