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전성기 이끈 경영인, 사진가로 인생 2막
[짬][짬] 전문경영인 출신 유현오 사진가
오는 4월2일까지 서울 자하문로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첫 개인전 ‘개와 늑대의 시간’을 여는 유현오씨는 인터넷과 게임회사 최고경영자를 12년가량 지낸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1983년 유공에 입사한 그는 2004년부터 3년 동안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를 지내며 2000년대 국내 최고 인기 에스앤에스였던 ‘싸이월드’ 전성기를 이끌었다. 에스케이그룹 경영기획실에서 제2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프로젝트팀에 참여하면서 아이티(정보기술) 쪽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1993년 미국 유학을 떠나 오스틴 텍사스주립대와 미시간주립대에서 정보통신 석사, 박사 학위도 땄다.
만 56살이던 201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가 잡은 인생 2막 주제는 사진이다. 어려서부터 친숙한 사진이지만 전문성을 갖추려고 지난 7년을 오롯이 사진 공부에 바쳤다. 중앙대 평생교육원 사진 아카데미와 한겨레문화센터 등에서 5년 동안 사진 전문교육을 받았고 2020년에는 홍익대 대학원 사진 전공에 등록해 최근 수료했다.
그 결실이 남북 ‘냉전’의 상징인 대전차장애물을 탐구한 이번 전시다. 지난 24일 오후 전시실에서 유 사진가를 만났다.
대전차장애물은 벽의 밑 부문에 설치된 폭약을 터뜨려 건축물을 부숴 떨어트림으로써 적의 전차가 나아갈 수 없게 막는 구조물이다. 경기 북부나 강원 지역 국도변 등에 설치된 대전차장애물은 당연히 북의 침략에 대비해 설치됐다. 그는 재작년 11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매주 두 차례씩 경기 북부와 강원 지역을 찾아 주로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대전차장애물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왜 대전차장애물인가’에 대한 답으로, 그는 전시 도록 마지막에 이 구조물의 존재는 “북한에 대한 이중적이면서도 모호한 우리 국민의 의식을 반영한다”고 썼다. “제가 군 시절 본 장애물은 주로 좁은 도로에 있었는데요. 이번에 보니 넓은 도로에도 설치되었더군요. 홍보벽처럼 위장되어 있어 무심코 지나치면 잘 알 수도 없죠.”
그는 “대전차장애물이 전시에 실효성이 없다는 게 연구자들의 대체적 결론이고 차량 소통과 도시 미관, 부동산 가격에도 안 좋은 영향이 있지만 지금도 드물지만 계속 설치되고 있다”며 ‘은폐된 형태의 대전차장애물’은 북을 협력/평화공존의 대상으로 볼지 아니면 대결/체제붕괴/흡수통일의 대상으로 볼지를 두고 나뉜 국민들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북한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대전차장애물이 많이 생겼더군요. 거기에는 권력을 공고화하려는 (박정희) 유신정권의 의도도 반영되었죠. 그 뒤로 서울 은평뉴타운의 예처럼 부동산 가치 하락에 부정적인 자본권력의 입김이나 주민 민원이 크게 작용하는 곳을 중심으로 대전차장애물이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철거 반대 목소리가 보수 언론 등에서 나오더군요. 국가안보의 상징을 철거하면 안보의식을 저해할 수 있다고요.”
‘서울의 봄’ 서울대 사회대 의장
‘싸이월드’ 전성기 이끈 경영인
인터넷·게임회사 시이오 12년
2016년 은퇴 뒤 7년 ‘사진’ 공부
첫 개인전 ‘개와 늑대의 시간’
“부친·숙부·외삼촌…사진 가족”
그는 이번 전시에서 “대전차장애물을 통해 국가안보라는 거대 담론이 여전히 사람들 옆에서 미시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환기하고 싶었다”며 말을 이었다. “경기 파주를 가 보니 주민들이 밭을 일구는 곳에 거대한 장애물이 줄지어 설치되어 있어요. 서민들이 (장애물 때문에) 땅을 밭으로 쓸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했죠.”
서울대 사회학과 78학번인 그는 ‘80년 서울의 봄’ 때 사회대 대의원회 의장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사진에 관심을 가졌느냐고 하자 그는 “제 디엔에이(유전자)에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부친이 주한미군 공보 일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고 숙부는 직업 사진가였죠. 외삼촌은 육군사관학교 사진반이었고요. 저도 어려서부터 사진을 계속 찍었어요. 회사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사진기와 렌즈를 살 정도였으니까요. 늘 사진가가 되고 싶었죠.”
그는 앞으로 사진 작업을 두고 “국가와 자본 권력이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뭘까. “(한국도)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자본 권력은 국가만큼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체계적, 구조적으로 나타납니다. 민간언론도 수익에서 가장 큰 비중인 광고 때문에 자본 권력에 반하는 보도를 하기 힘들잖아요?”
대기업 시이오 출신이 자본 권력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흥미롭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받았다. “기업이 바로 자본은 아닙니다. 기업은 물론 주주 등 이해 관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고용으로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죠.”
그는 기업이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며 자신이 싸이월드를 이끌던 시절을 떠올렸다. “2005년 싸이월드에 시민사회단체와 이용자를 이어주는 ‘사이좋은 세상’을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단체의 후원과 봉사 활동이 크게 늘었죠.”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신의 가장 큰 성취를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의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 ‘네이트온’이 2005년 세계 메신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 ‘엠에스엔’을 제치고 국내 1위로 올라섰을 때”라고 답한 그에게 요즈음 유튜브 등의 1인 미디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기술 결정론을 말하지만 결국 세상은 사람이 바꿉니다. 미디어 기술도 경쟁의 현장이죠. 유튜브가 동영상 서비스 시장을 석권하면서 독점이나 지나친 상업성 추구 등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유튜브 안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키우는 이들이 있어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리고 자본과 시민 등 이해관계가 다른 세력들이 경쟁하고 그 힘이 나란히 작용하고 있는 거죠. 자본의 힘이 셀 때는 대안 세력이 약해지지만 그 반대가 되기도 하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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