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버닝썬 승리 바꿔치기, 반성은?

2023. 3. 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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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승리에 대한 보도들이 잇따랐다. 얼마 전 출소한 이후의 근황을 알리는 기사들이 나온 것이다. 이런 보도 속에서 아직도 다수 매체들이 승리와 버닝썬 사태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승리가 버닝썬 사태의 핵심 인물, 심지어 당사자이기까지 하다는 내용들이다. 언론은 승리에게 반성하는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준엄하게 꾸짖었다. 하지만 정작 언론이 반성하지 않는 것 같다.

버닝썬 사태에 대한 보도는 처음부터 이상했다. 버닝썬 사태는 강남 버닝썬 클럽에서 부유층 등 손님들이 공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조직적으로 마약범죄, 성범죄 등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터진 사건이다. 이 의혹의 진실을 밝히려면 정말 마약이 유통됐으며 성범죄가 저질러졌는지, 그랬다면 마약은 누가 제공하고 누가 복용했는지, 성범죄는 누가 저질렀는지, 누가 은폐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많은 매체는 승리와 정준영 등 연예인들에 대해서만 보도했다.

그런 언론에 의해 버닝썬 사태는 곧 승리, 정준영 사건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승리가 핵심으로 지목됐다. 왜 승리가 핵심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승리가 버닝썬에 마약을 공급했다든지, 여성 손님들을 성범죄 피해자로 만들었다든지, 버닝썬과 공권력의 유착 고리 역할을 했다든지 등등의 혐의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승리가 버닝썬 사태의 '묻지마' 핵심이라고 했다.

언론이 반복적으로 그렇게 보도해서인지 정말로 승리가 버닝썬 사태 핵심이 돼버렸다. 그 바람에 버닝썬 사태 해결의 종착점은 승리의 구속 및 처벌로 일찌감치 정해졌다. 언론이 수사 상황을 거의 생중계하다시피 하면서 수사기관은 승리와 버닝썬 사태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데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연예인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버닝썬 사태는 흐지부지됐다. 소문만 무성했을 뿐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엄청난 공분에 비해 처벌받은 이도 별로 없다. 만약 문제가 있었더라도 관심이 다른 곳으로 흐르는 동안 관련자들이 도피하고 증거를 인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황당하게 진행된 게 버닝썬 사태다. 언론이 버닝썬 사태를 승리 사건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당연히 승리 재판 후엔 언론의 반성이 나왔어야 했다. 재판에서 승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9개 혐의에 대해 전부 유죄를 받았다. 이밖에 혐의는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횡령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알선 등) △상습도박 △외국환거래법 위반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 △특수폭행교사 혐의 등으로 모두 승리의 개인 비리들이다. 버닝썬 사태 관련 내용은 하나도 없다.

언론이 승리 처벌만을 외치는 속에서 수사기관이 승리를 장기간에 걸쳐 탈탈 털었지만 끝내 버닝썬 사태와의 연관성은 찾지 못하고 개인비리들만 별건으로 털어낸 모양새다. 이 정도 결과가 나왔으면 언론이 그동안의 '버닝썬 사태 핵심은 승리' 보도에 대해 반성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승리 재판에 대해서도 일각에서 '마침내 버닝썬 사태가 마무리됐다'는 식으로 보도하더니, 최근 승리가 출소하자 다시 승리와 버닝썬 사태를 연결시키는 보도들이 줄을 이은 것이다. 그러면서 앞에 언급한 것처럼 승리에게 반성하라고 꾸짖었다. 더 크게 반성해야 하는 쪽은 언론인데 말이다. 버닝썬 사태라는 엄청난 문제를 언론이 앞장서서 덮지 않았는가.

대한민국 언론이 집단적으로 공모해 일부러 버닝썬 사태를 덮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버닝썬 사태의 와중에 승리 같은 유명 연예인의 이름이 나오자, 그 화제성만을 보고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다 빚어진 참사로 보인다. 클릭수, 화제성, 시청률 등에 목을 매다보니 사회문제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연예인을 내세우는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버닝썬 사태는 엄청난 충격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대사건이다. 버닝썬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버닝썬은 기존 강남 대형 클럽의 업태를 모방해서 만들어졌고, 그곳의 MD들도 다른 강남 클럽에서 스카웃된 이들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강남 클럽 MD가 "나는 그 어떤 클럽도 버닝썬과 손절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버닝썬 문제가 강남 클럽들의 문화와 연결됐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의 진실을 밝혔어야 하는데 모두가 승리만 바라보는 사이에 진상 규명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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