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잃은 열살, 팔십 노인이 됐다…‘노근리 책임’ 응답은 언제?

오윤주 2023. 3. 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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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명.

지난 26일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노근리사건 희생자 유족회 모임이 열렸다.

노근리사건 생존자와 유족들은 우리 정부와 국회에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국회는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고 정은용 노근리사건 대책위원장의 실화소설)란 항변에 답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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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양해찬 노근리사건 유족회장이 노근리사건 현장인 경부선 철도 쌍굴다리에 박혀 있는 총탄 자국을 가리키고 있다. 오윤주 기자

[전국 프리즘] 오윤주 | 전국부 기자

32명. 총탄의 아픔을 지닌 채 살아온 생존자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5~29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철도 쌍굴다리 주변에서 미군 총격으로 피란민 등 수백명이 숨졌다. 희생자 대부분은 피란시켜줄 테니 마을을 비우라는 말을 듣고 나온 주민들이었다. 올해 73돌을 맞는 노근리사건이다.

지난 26일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노근리사건 희생자 유족회 모임이 열렸다. 멀리 서울·부산·대전·청주 등에서 온 이들도 있지만 영동 사람이 반 이상이다. 80·90대 촌로가 태반이다. “이제 다들 갈 날 다가와. 내가 열살짜리 꼬마였는데 팔십 노인이 됐잖아.” 양해찬(83) 유족회장의 말이다. 그는 사건 당시 아카시아숲 속에 숨어 있다가 허벅지·정강이에 파편상을 입었다. 할머니, 형, 동생이 총격에 잇따라 숨지는 걸 지켜봤다. 하복부에 총탄을 맞아 신음하던 어머니, 눈을 잃고 피 흘리는 누나 곁에서 사흘 밤낮을 버틴 끝에 기적처럼 살았다. 신음조차 제대로 못 내고 73년을 살았다.

“어미 잃은 열살짜리. 지금은 트라우마다 뭐다 해서 치료받고 하지만, 그땐 하루하루 먹고 살아남는 게 일이었지. 이렇게 살아온 걸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날 유족회 모임 화두는 배·보상이었다. 하지만 다들 넋두리·푸념만 되풀이하다 돌아섰다. 유족들은 지난 2021년 희생자·유족 등 배·보상, 트라우마 치유 지원 등을 담은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두개가 잇따라 발의되면서 한껏 고무됐다. 임호선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이명수 의원(국민의힘)이 각각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여야 의원들이 두루 참여했다. 그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한 전해철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제주 4·3사건은 한국전쟁 전후 과거사 사건 피해자 보상 기준의 선례가 된다. 노근리사건 보상은 제주 4·3사건을 기준으로 검토하겠다”며 힘을 보탰다. 실제 노근리 특별법 개정안 또한 제주 4·3사건 보상 기준(사망·행방불명자 9천만원)을 본보기로 설계했다. 지난해 7월부터 제주 4·3사건 피해자 보상이 이뤄지면서 노근리사건 유족들 또한 기대가 부풀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아무런 진전도 없는 상태다. 왜 그럴까. 미국 쪽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노근리사건 관련 배·보상 규정을 마련하면 미군 관련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의 선례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2기 진실화해위는 전국 40곳에서 미군 관련 사건 조사를 개시했다.

하지만 노근리사건은 경우가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불완전하지만 이미 미국 쪽이 사과와 보상안까지 제시해 정부 배·보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2000년 9월 <에이피>(AP) 특종보도로 노근리사건이 공론화하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듬해 1월 유감성명을 내고 추모탑 건립(118만달러)과 장학금(280만달러) 지급 등을 제안했다. 다만 한국전쟁 당시 미군 관련 모든 민간인 피해 사건을 대상으로 제시한 위로금이었고, 노근리사건 유족회 등은 노근리사건만을 위한 보상을 요구했다. 미국이 이 요구를 거부하면서 제시했던 위로금은 미국 국고로 환수됐고, 미국은 이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노근리사건을 특종 보도한 <에이피> 찰스 핸리 전 기자는 지난해 12월 노근리 국제평화포럼에서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 정부가 20여년 전 보상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미국은 70여년 전 미군에 희생된 수백명을 기리고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근리사건 생존자와 유족들은 우리 정부와 국회에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정부가 인정한 노근리사건 희생자는 226명(사망 150, 행방불명 13, 후유장해 63)이다. 2005년 조사 때 2240명이던 유족은 이제 1461명으로 줄었다. 국회는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고 정은용 노근리사건 대책위원장의 실화소설)란 항변에 답할 의무가 있다.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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