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 곳간 채운다 …대기업 현금보유 16조 늘려

강인선 기자(rkddls44@mk.co.kr), 강민우 기자(binu@mk.co.kr) 2023. 3. 28. 17: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총 상위 20개社 분석해보니
2021년 108조서 작년 124조로
포스코홀딩스·LG엔솔 등
유동성·투자자금 확보 차원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
올 계열사서 조단위 자금 빌려

지난해 사업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둔화, 금리 상승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안전자산 비중을 키운 것이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대규모 자금을 대여해 주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금융·보험 제외)의 지난해 말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총액은 124조3383억원으로 2021년 108조6329억원 대비 1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97조471억원과 비교하면 28.1% 상승했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란 현금이나 예금 등을 뜻한다. 이번 조사에선 재무제표의 단기금융상품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많이 늘어난 기업들은 현대차·SK이노베이션처럼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증가한 경우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차입금을 늘린 경우가 많았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단기차입금을 통해 1조7646억원의 현금이 유입됐는데 2021년에는 3299억원의 현금이 유출된 것과 대조된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해 차입금을 통해 현금흐름 액수가 전년 대비 9000억원가량 늘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결 기준에선 단기금융상품이 16조원가량 감소하고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0조원가량 늘었다. 다만 별도 기준으로는 단기금융상품이 15조원가량 감소했으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올해 들어서도 기업들의 현금 확보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룹사들이 계열사로부터 차입을 활용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27일 LG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LG전자로부터 1조원의 자금을 빌린다고 공시했다.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고 신사업 확장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다. 원금은 2년 거치 1년 분할 상환되며 이자율은 연 6.06%로 매 분기 LG전자에 지급한다. LG디스플레이 주가는 28일 전 거래일 대비 8.9% 오른 1만6270원에 장을 마감했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14일 연결 기준에 포함되는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한다고 공시했다. 만기는 2025년 8월 16일이며 연 4.6%의 금리가 적용됐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영업이익은 전년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파운드리 역량 강화 등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기업 계열사들 간 자금 대여가 두드러지는 것은 증시가 부진하고 시장 금리는 오르면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이 악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상증자의 경우 주가 부진으로 증자에 참여하고자 하는 투자자를 찾기가 어렵다. 또 주가가 부진한 상황에서 유상증자로 주주가치가 희석되면 주주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회사채 발행이나 은행 대출도 부담이 커진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AA-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는 5.24%로, 2021년 말 2.42%, 2020년 말 1.3%에 비해 급격히 높아진 상황이다. 올 들어 회사채 시장은 숨통이 트였지만 금리 수준 등은 여전히 높은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계열사를 통한 자금 대여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자금을 대여하는 대상이 연결재무제표 작성 대상 계열사라면 이자 비용이 연결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는다. '내부거래'로 인식돼 이익과 비용이 상계되기 때문이다. 회사채를 발행해 지급하는 이자는 이자비용에 포함돼 당기순이익을 감소시키지만 이 같은 부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연결 대상 종속회사다. 전규안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계열사 간 자금 대여는 돈을 빌려주는 기업과 돈을 빌리는 기업 모두에 윈윈이 될 수 있다"며 "돈을 빌려주는 계열사는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고 돈을 빌리는 계열사는 이자비용이 연결재무제표상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금을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이 기밀 사항이라면 정보 보안에도 도움이 된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채권자들에게 자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설명하는 과정이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비밀이 새 나가기도 하고, 채무 조달 목적이 인수·합병이라면 매각가격이 오르기도 한다. 인수자의 인수 의지를 그만큼 보여주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재무구조가 부실한 그룹들은 계열사 간 자금 대여 등은 주의해야 한다.

[강인선 기자 / 강민우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