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K-통역봉사

2023. 3. 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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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네, bbb 통역봉사자입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인데요. 환자가 ○○시술을 받았는데 상황이 안 좋아요. 통역을 해주세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길게 이어진다. 병원의 긴박한 전달 사항을 완전히 전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다. 경찰서에서 걸려온 추행사건, 여권 분실, 도난신고, 공항에서의 트러블 해결, 휴대폰 개통 문제, 보건소 코로나 신고, 택시 승객의 목적지 찾기, 119구급대 출동 등 헤아릴 수 없는 통역 요청을 bbb 통역봉사자들이 해낸다.

bbb는 2002년 월드컵 때 시대의 지성 고 이어령 교수의 창안으로 만들어졌다. 언어, 문화의 장벽이 없는 소통의 세상을 지향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만든 세계적인 통역봉사단체다. bbb는 'before babel brigade'의 약자로, 인류가 하나의 언어로 소통했던 바벨탑 이전(before babel)으로 돌아가는 단체(brigade)를 뜻한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는 물론 스웨덴어, 몽골어, 인도어까지 20개 언어에 450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통역 방식은 간단하다. 누구든지 bbb 대표번호(1588-5644)에 전화를 걸면 자원봉사자가 24시간 휴대폰 무료 통역을 한다. 통역 앱을 사용하면 더 편리하다.

필자는 일본어 통역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 한국인과 일본인 여행자는 물론이고 해외에 있는 재외동포, 해외여행 중인 한국인까지도 전화를 걸어온다. 간혹 잘못 걸려온 간단한 영어 통역을 응대해 안내하기도 한다.

통역 요청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한밤중 1~2시에 전화가 올 때는 잠결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망설여진다. 하지만 내가 받지 않으면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누군가 다음 통역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알기에 결국 응대하게 된다. 장소 또한 마찬가지다. 마침 지하철에서 받으면 천천히 응대하면서 인근 역에 내려 통역을 마치고 다음 열차를 타고 간다.

20년 가까이 활동하는 동안 우수봉사자상도 몇 차례 수상했으나 부끄러운 일이다. 통역을 요청한 분들이 받아야 할 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경찰관, 간호사, 택시기사, 민원 담당 공무원이 외국인과 마주하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통역을 요청한다. 그동안 접해본 모든 분은 따뜻하고 적극적인 민간 외교관이었다.

K팝, K드라마, K무비의 멋진 '한류'가 눈부시고 자랑스럽다. 휴대폰으로 24시간 완벽한 무료 통역 세상을 만든 전 세계 유일한 방식의 bbb 통역 또한 세계 속의 한류! 'K-통역봉사'라고 생각한다.

지금 바로 휴대폰에 1588-5644(bbb 통역)를 입력하거나, bbb 통역 앱을 깔아두시라. 언젠가 한 번이라도 사용하거나, 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에게 이런 좋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K-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장동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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