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남’을 아시나요···1인 중장년 남성들을 위한 요리교실 가보니

유경선 기자 2023. 3. 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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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동선동주민센터와 동선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역에 거주하는 1인가구 중·장년 남성을 위한 요리교실 ‘요리하는 동선동 남자들’(요동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2일 동선동주민센터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성북구 제공

머리가 희끗한 남성 10명이 지난 22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주민센터 공유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대 앞에 섰다. 이들은 동선동에서 홀로 사는 중·장년들이다. 평생 칼 한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지만 함께 요리하는 즐거움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혼자 사는 것이 흔해지면서 중장년 1인 가구의 증가세도 가파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54만 가구에 그쳤던 중장년 1인 가구는 2019년 240만 가구로 급증했다. 이들은 불규칙한 식사와 생활 패턴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경우가 많지만, 혼자 살면서 요리를 배워 제때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북구의 경우 동선동에 1인 가구가 가장 많다. 이에 동 주민센터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함께 ‘요리하는 동선동 남자들’(요동남)을 기획해 매달 한 번씩 1인 가구 중·장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요리교실을 열고 있다. 참가자들은 40대 후반~60대 중반 남성들이다.

이날 메뉴는 메추리알장조림과 깻잎김치, 육전이었다. 엉거주춤 서 있던 이들은 요리 도우미들 ‘지휘’에 따라 장조림에 들어갈 새송이버섯과 고추를 썰고, 깻잎 사이사이로 켜켜이 양념을 올렸다. 육전에 쓸 고기는 망치로 다졌다. 어설픈 손놀림이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주민센터와 동선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역에 거주하는 1인가구 중·장년 남성을 위한 요리교실 ‘요리하는 동선동 남자들’(요동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2일 동선동주민센터에 메뉴와 조리법이 안내돼 있다. 유경선 기자

홀로 사는 남성들이 앞치마를 두르기까지는 사실 순조롭지 않았다. 동선동 관계자는 “참여를 권하는 전화를 하면 화내면서 끊는 분도 있었다”며 “참가자들 역시 처음엔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3회차 요리교실이 진행되면서 이들도 비로소 요리를 통한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송현우 동선동 보건복지지원팀 계장은 “마음을 열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분들이 누구보다 즐겁게 요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참가자는 옆 사람의 칼질과 견주면서 “너무 비교된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서로의 전 부치는 솜씨를 칭찬하기도 했다. 도우미로 나선 동선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봉사자들은 참가자들의 미숙한 요리솜씨를 장난스럽게 타박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봉사자 한모씨(69)는 “이웃과 유대관계 없이 사시던 분들인데, 밖으로 나와서 열심히 요리하시는 걸 보니 기쁘다”고 말했다.

성북구에서 사회적협동조합 ‘청년문간’을 운영하는 이문수 신부는 ‘요동남’에 600만원을 후원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청년들을 위해 ‘3000원 김치찌개’를 파는 이 신부는 ‘요동남’ 소식을 듣고 “혼자 사는 남성의 이야기가 남일처럼 들리지 않는다”며 후원금을 보탰다고 한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봉사자들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20인분 반찬거리를 위해 장을 보고 요리하기 편하게 식재료를 밑손질한다. 메뉴도 고심해 선정한다.

요리교실이 예정된 내년 3월까지는 메뉴가 전부 짜여 있다. 최점순 총무(62)는 “(표정과 말투 등) 참가자들이 점점 달라지는 모습이 보여 힘이 난다”며 “얼굴에 웃음을 되찾으실 때까지 계속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동선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최점순 총무(62)가 요리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 유경선 기자

참가자들은 거듭 감사함을 전했다. 노모씨(50)는 “집에서 홀로 식사할 때 대부분 라면을 끓여먹곤 했는데, 모르던 요리를 배우고 반찬도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홍인태씨(59)는 “이전에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려고 했는데 이제 ‘맛있게’ 먹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며 “우리를 위해 (재료와 메뉴 등을) 준비해주시는 이웃들의 손길이 감사하다”고 밝혔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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