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오타니와 克日

김인구 기자 2023. 3. 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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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과 일본의 결승전.

일본의 간판 오타니 쇼헤이가 마무리 투수로 나왔고, 2사 뒤 오타니의 LA 에인절스 팀 동료인 마이크 트라우트가 타석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겨서 배가 아프다는 질투심보다는 오타니라는 '야구 천재'의 완벽한 실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일본 선수가 이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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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구 체육부장

3월 22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과 일본의 결승전. 한국은 졸전 끝에 일찌감치 1라운드 탈락한 터라 관심이 뚝 떨어진 상황이었다. 라이벌 일본이 8회까지 3-2로 미국에 앞서고 있어 스코어도 마뜩잖았다. 그런데 미국의 마지막 기회인 9회 초, 만화 같은 일이 펼쳐졌다. 일본의 간판 오타니 쇼헤이가 마무리 투수로 나왔고, 2사 뒤 오타니의 LA 에인절스 팀 동료인 마이크 트라우트가 타석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한솥밥 식구의 양보 없는 세기의 대결. 오타니가 시속 100마일(161㎞)을 넘는 강속구로 윽박지르다가 풀카운트에서 허를 찌르는 변화구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자 나도 모르게 감탄과 탄식이 새어 나왔다.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야구팬들의 속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이겨서 배가 아프다는 질투심보다는 오타니라는 ‘야구 천재’의 완벽한 실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선수를 편든 것만으로 친일(親日)이나 매국노로 매도당하기 쉽던 기억을 떠올리면 내 안의 큰 변화였다.

이번 대회의 오타니를 통해 배운 점이 많다. 전 세계 최고의 스타이지만 늘 솔선수범하는 겸손한 자세,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 그리고 실력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언행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가 일본인임을 떠나서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라는 지역적·역사적 테두리만 한 겹 벗겨내면 그는 충분히 ‘추앙’받을 만한 월드 클래스였다.

하물며 그가 훌륭한 인성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 말해 무엇할까. 오타니 주변에는 미담이 끊이지 않는다. 경기 후 야구장을 떠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최선을 다한 체코팀에 존경을 표한다든지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심지어 그가 친한파가 아닌지를 궁금하게 하는 사진도 공개됐다. 메이저리그 초창기에 현대차를 타고 다녔던 소박한 모습이다. 당시 운전면허가 없어 다른 사람이 운전해줬는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뒷좌석이 아닌, 운전자 옆 좌석에 앉았다는 이야기는 무릎을 치게 한다. 앞서 공개된 오타니의 10대 고교 시절 인생계획표는 더욱 기가 막히다. 20세 메이저리그에 들어가고 21세 선발 투수 되기, 27세 WBC MVP 되기 등 매우 구체적인 목표가 적혀 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일본 선수가 이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적이 있을까. 전례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은 WBC에서 오타니의 활약에 주목한 것은 그에게서 앞으로 한·일 간에 펼쳐질 미래 관계에 대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무조건적 비난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일본 내에서 일방적으로 혐한을 부르짖는 일부 극우파의 행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때론 먼저 손을 내밀고, 때론 지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 일제강점기의 치욕적인 역사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인 나머지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건 어리석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나 안보 면에서 서로 도와야 ‘윈윈’할 수 있다. 극단적 친일이나 반일 대신 극일(克日)의 정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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