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쿠팡 새벽배송 알바까지 뛴 이 여배우, ‘카지노’로 떴어요
영어·중국어·일어 능통…OTT 시대 ‘준비된 배우’
디즈니+ ‘카지노’서 필리핀 술집 마담 ‘미자’ 역
6개월에 한 번씩 제주에 내려가 ‘한달살이’를 하고,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쿠팡 새벽배송 알바도 뛰었다는 이 여배우. 남들 보다 늦은 나이에 배우의 길로 들어섰지만, “모두 연기를 잘 하기 위한 쉼”이라고 웃었다.
어떤 색을 입혀도 ‘그 얼굴’이 되기 위해 “항상 나 자신을 도화지로 비워둔다”는 그는 아직은 이름조차 낯선 배우 정윤하(37)다. 하지만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법한 그 얼굴.
지난 22일 최종화를 공개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 ‘카지노’에서 필리핀 술집 마담 ‘미자’로 출연했다. 짧은 분량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필리핀 현지 마담을 섭외한 게 아니냐?”는 착각이 들 만큼 캐릭터와 찰떡이었다.
“아니 동남아시아 최고의 룸빵 마담께서 썩은 걸 달라니 가호가 있지”(차무식 역 최민식)
“나 요즘 손가락 빨아요. 영업도 못하고 굶어 죽게 생겼어”(미자 역 정윤하)
“아이구 왜?”(최민식)
“맨날 삥뜯겨서 양주짭 좀 팔았더니 영업정지 때리더라고”(정윤하)
“누가?”(최민식)
“요즘에는 공무원들이 그래. 한국 대사관 영사인데. 아주 좇같은 놈 하나 있어”(정윤하)
“조윤기?”(최민식)
“어, 알아?”(정윤하) 이하 생략.
필리핀 영사 ‘조윤기’(임형준)와 끊임없이 대립하는 ‘차무식’(최민식)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면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최근 충무로에서 만난 정윤하는 “리얼한 연기를 위해 유흥업소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회장님들 오시는 그런 고상한 마담을 생각했다가 감독님과 대화 끝에 더 이상 갈 곳 없는 거친 느낌으로 가게 됐죠. 한국에 있는 유흥업소 마담보다 보통 필리핀에 간 사람들은 여기서 사고를 치거나 돌아올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전사를 많이 만들었어요. 이미 거기까지 도망 간,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는 콧소리 내면서 할 것 같진 않았어요. 포주의 느낌이 더 많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유체이탈자’라는 작품을 통해 윤계상 선배와 친분이 있었는데, 윤계상 선배님이 강윤성 감독님과 친하시잖아요. 그 인연으로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들어가기 굉장히 힘든 작품인데 감독님이 기회를 주신 거나 다름 없지요. 제 추측으론 사석에서 불의에 관한 얘길 듣고 크게 흥분하는 저를 인상 깊게 보신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어요.(웃음)”
대작 ‘카지노’는 돈도 빽도 없이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전설이 된 남자 차무식(최민식)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인생의 벼랑 끝 목숨 건 최후의 베팅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최민식의 25년 만 드라마 복귀작,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의 첫 OTT 도전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폭주 속에서도 공개 첫 주만에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대 시청 시간 기록을 경신, 시즌1의 부진을 털고 흥행 화력을 보이고 있다. 2월 기준 디즈니+ 앱 설치자 수는 505만명으로 작년 같은 달의 335만 명에서 51% 늘었다. ‘카지노’ 흥행이 결정적이었다.
정윤하 역시 ‘카지노’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인스타 외국인 팔로어가 늘었다”며 “주변에서도 이름 보다 ‘미자’라고 불러주신다”고 했다.
그 역시 이 작품의 열혈 애청자다. 이미 두 번 정주행 했고, 두고 두고 또 보고 싶은 작품이다. “완성도가 너무 높고, 연기는 물론 영상·음악까지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좋은 작품에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차무식’ 역 최민식과의 작업은 ‘감동’ 그 자체였다. 초면은 아니었다. 아직 공개 전인 작품 고사에서 만난 인연이 있다.
“촬영 날 선배님께 그 얘길 했더니 반가워해주셨어요. 선배님의 연기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인데 후배들이 긴장하는 걸 풀어주려고 농담도 하시면서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무엇보다 진짜 유쾌하시고 ‘어떻게든 신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 편한대로 하라’고 말씀해주셔서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됐죠.”
되짚어 보면 인생 또한 버라이어티 하다. 서울여대 사학과 졸업 후 중앙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학과 석사 과정을 밟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3년간의 유학생활도 했다. 미국 체류 기간 중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미스코리아 뉴욕에 참가하기도 했다.
2007년 광고모델로 데뷔해 ‘LG공식모델’이라 할 만큼 유명 가전제품 광고에 단골로 얼굴을 보였다.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게 된 것은 2018년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부터다.
영화 ‘용의자’, ‘광대들’, ‘변신’, ‘백두산’, 드라마 ‘황후의 품격’, ‘바람이 분다’, ‘마인’, ‘인간실격’, 연극 ‘둥지’, ‘의자는 잘못없다’ 등 드라마, 영화, 연극무대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아직 이름 석자를 단박에 각인시킬 작품을 만나진 못했지만 조급하지 않다. 앞에 놓인 허들을 넘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도 있다. 무대 밖에서 쌓아온 경험들은 앞으로 배우 인생에 탄탄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골프로 만나 절친이 된 장새별 아나운서는 정윤하에 대해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영어, 중국어, 일어가 가능해 OTT 시대에 안성맞춤인 배우”라고 했다.
최근 한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넷플릭스 드라마 ‘OX, 키티’에 한국인 간호사 역으로 캐스팅돼 100% 영어 대사를 소화하기도 했다.
“저는 정말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어요. 호기심도 많고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실행하는 것도 좋아하죠. 한때 운동에 미쳐서 필라테스, 스킨스쿠버, 골프 등을 엄청나게 했고, 여행을 너무 좋아해 2년 전부터 6개월에 한 번씩은 제주에 내려가 한달살이를 해요. 제주에 있는 한 호텔에서 서빙 알바도 해봤죠. 직접 닭 튀기고 감자튀김도 만들었어요.”
“배우는 기다림이 길어지면 잡생각이 많아져요. 그래서 차라리 ‘내몸을 굴리자’ ‘육체를 힘들게 하자’ 싶었죠. 밤 12시에 물류센터에 들렀다가 새벽 6시까지 돌렸어요. 제가 맡은 지역은 강남구 일대였는데 하루 50개씩 돌렸던 것 같아요. 주말 빼고 20일 하니까 통장에 딱 100만원이 꽂히더라고요. 안 쓰던 근육을 쓰니 보람도 있었고, 화폐 가치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하게 됐죠. 그로 인해 들어오는 생각과 감정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어느덧 배우로서 30대의 능선을 넘고 있는 그는, 40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적어도 40대는 그에게 연기 꽃을 피워줄 찬란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인지도도 중요하고 인기도 좋지만 일관성 있는 사람, 소신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정윤하라는 가장 개인적인 개체, 독창적이고 유니크 한 배우가 되는 게 목표에요. 지금까지 제가 소중하게 지켜온 것들도 있고, 초심을 가지고 훈련해나가고 싶은 것들도 있으니까요. 분명한 건 연기하는 지금이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사실입니다.”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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