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 사고, 집 근처 회식 … ‘안 걸리면 그만’ [심층기획-지자체·지방의회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
2023년 광역의회 평균 2억5200만원
1인당 매달 200만~300만원 쓸 수 있어
선거철 식사 제공 등 부정사용 속출
단체장도 휴일에 쓸 수 없지만 사용
공적인 일에 쓰라고 세금으로 내준 돈
단체장·지방의원 ‘입맛대로 사용’ 많아
해외서 명품 넥타이 구입 후 거짓 신고
들통나자 ‘자진 환수’ 택해 반납하기도
분기별 1회 집행내역 공개하고 있지만
모니터링·감시 제대로 안 돼 ‘사각지대’
집행 규정 모호하고 처벌도 ‘솜방망이’
“직업윤리 의식 제고·규정 현실화 필요”
검찰에 송치된 단체장도 있다. 김성 전남 장흥군수는 업무추진비로 전·현직 군의원에게 식사대접을 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최근 검찰에 송치됐다. 김 군수는 지난해 9월 장흥군 의정회 회원 15명에게 28만5000원 상당의 점심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에 넘겨진 지방의원도 있다. 경북 영주시의회의 한 의원은 2021년 유권자 60여명에게 식사와 떡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의회의 또 다른 의원도 업무추진비로 공무원 등 50여명에게 피자·치킨 등 37만원 상당의 음식을 제공한 혐의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방의회뿐 아니라 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 부적정 사용도 다수 포착됐다.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는 직원 생일선물과 상품권 등을 업무추진비로 구입했다. 다른 기초단체는 2020년 명절 선물로 8600여만원어치의 상품권과 선물세트를 구입했다. 민선 7기 전 용산구청장은 업무추진비를 휴일에 사용할 수 없는데도 모두 19차례 휴일에 썼다. 전 강북구청장과 전 서대문구청장도 각각 13차례, 12차례 확인됐다. 경기지역 기초단체는 지난해 업무추진비로 명절이나 선물 등을 구입해 직원들에게 지급했다가 감사에 걸렸다.
2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광역의회 업무추진비는 평균 2억5200만원, 기초의회는 평균 7400만원이다. 1인당 매달 평균 200만∼300만원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 목적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거나 사적으로 유용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의원들이 업무추진비를 내 돈처럼 사용하는 배경에는 업무추진비가 사실상 감사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 꼽힌다. 업무추진비의 투명성과 신뢰성 장치가 있기는 하다. 정부는 최소 분기에 1회씩 집행 내역 등을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가 끝이다. 집행 내역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감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형식만 갖추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행정안전부 업무추진비 훈령에 따르면 집행 목적과 일시, 장소, 대상 등을 적은 증빙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집행내역을 한 달에 1회, 최소 분기에 1회 올려놓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부서마다 공개 형식이 다른 데다 사용내역 공개 여부도 임의로 하게 돼 있어 업무추진비가 취지에 맞게 사용됐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지방의회 업무추진비를 감사하는 지자체도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과 광주, 대전, 세종 등 8개 시·도에 불과하다. 주먹구구 방식으로 공개되는 시스템도 도마 위에 오른다.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은 의회 사무처 직원들이 의원들에게 영수증을 받아 손글씨로 작성한다. 영수증 등 증빙 서류 첨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 업무추진비 집행 목적이 대부분 ‘의정관련 간담회’ 등으로만 공개되고, 구체적인 목적이나 대상을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8년엔 관악구의회 의장단이 업무추진비로 1400만원 상당의 지역 특산품, 700만원 상당의 등산복을 구입해 동료 의원 및 사무국 직원에게 선물로 제공했던 사례가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지방의회 업무추진비 집행 규정의 모호성도 집행 투명성 강화를 발목 잡는 요인이다. 업무추진비 사용 목적 등을 규정한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회계관리에 관한 훈령’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를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 사용자의 자택 근처 등에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자택 근처로 봐야 하냐는 논란이 지속 일고 있다.
지방의회 업무추진비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 제기되는 것은 공개 방식의 느슨함에서 기인한다. 집행 내역에 대한 오류가 발견되면 실수라고 다시 고치는 상황이 빈번하면서 업무추진비에 대한 집행기준과 관리방안에 대한 새로운 지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업무추진비는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인데, 사용하려면 당연히 합법적이어야 하지요.”
설재균(32)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은 2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은 물론, 대전을 포함한 지역의 지방의원이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시민들의 직접 감시가 가능해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설 팀장은 직원들과 함께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전 광역·기초 의회 업무추진비를 분석했다. 그는 “대전의 경우 그동안 업무추진비와 관련해 시민단체가 이를 면밀히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며 “꼬박 9개월 동안 살펴봤더니, 문제점이 부지기수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공개 내역 자료의 부실이었다. 행정안전부 훈령에는 업무추진비를 집행할 때 집행 목적과 일시, 장소, 대상 등을 증빙 서류에 기재해야 하는데, 대전시의 경우 업무추진비 공개 내역을 봤을 때 이를 지킨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설 팀장은 “가령 식사를 했다면 누구랑 했는지를 기입해야 하는데 그게 안 나왔다”며 “집행 목적엔 현안 사안 논의라고 돼 있는데, 유관 기관으로만 명시된 경우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원들이 동네 주민이나 유권자들과 자리를 같이했다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훈령 기준이 모호해 대전참여연대가 임의로 분석해 위반 의혹 여부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역풍도 있었다. 설 팀장은 “지방의회가 훈령에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위반 소지가 없다는 답변을 내놓는데 의회가 그런 대응 뒤에 숨는다면 곤란하다”며 “그러면 의회는 필요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지방의회가 조례 제정·개정·폐지 권한을 지녔는데, 훈령 기준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업무 태만이라는 지적이다.
규정대로만 하면 의정 활동이 제한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잘못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규정에 맞추다 보면 의정 활동에 제약이 있다는 주장에 그 반대의 질문을 해보자”며 “그렇다면 제한이 없었을 때는 얼마나 의정 활동을 잘했는지 따져보자”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의정 활동 투명성과 신뢰성 회복을 위해선 보다 구체적인 범위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참여연대는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사용 대상 ‘유관 기관’에 대한 해석을 요청했다.
그는 “들키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인데, 사실 이게 가장 무서운 것”이라며 “시민을 위한 봉사자라는 무게감이 크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전·안동·장흥·광주=강은선·배소영·김선덕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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