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업 비서 63% 사라졌다, 그 자리 꿰찬 건...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3. 3. 28.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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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AI가 똑똑해지며 사람처럼 일정 관리
기존 비서 63% 줄어
2006년 할리우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 배우 메릴 스트립(오른쪽)이 세계적 패션지 런웨이의 편집장, 앤 해서웨이가 그의 비서로 출연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 대기업과 로펌에선 이런 임원 개인비서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20년간 그 숫자는 63% 급감했으며 2031년까지 20% 더 줄어들 전망이다. /조선일보 DB

미국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고위 임원들과 함께 일하던 개인 비서들이 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발달로 비서의 주요 업무인 일정 관리나 메시지 응대가 간편해지고 코로나 위기를 겪은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선 영향이다. 비서를 두지 않고 웬만한 일은 스스로 처리해야 ‘권위를 내려놓은 멋진 리더’라는 인식 변화도 변화를 불러왔다.

최근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약 137만명이었던 기업 고위직 비서는 2021년 50만명으로 63% 줄었다. 10년 후엔 40만명으로 20%가 더 감소한다고 노동부는 보고 있다. 실제 월가 금융사들과 대형 로펌·회계법인,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 등에선 임원들이 개인 비서를 두는 경우가 드물어졌고, 필요 시 비서 1명이 임원 여러명의 업무를 공동으로 봐주는 형태도 많아졌다.

가장 큰 원인은 AI 등 신기술의 발달이다. 비서들의 주업무인 회의·출장 등 스케줄 관리, 각종 예약, 지출 명세 정리, 이메일 응대 등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점점 발달해 스스로 처리하기가 쉬워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디지털 기술에 능숙한 젊은 CEO들이 늘어나면서 웬만한 업무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앱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늘었다. 비서에게 일정 관리나 이메일 응대를 맡기면 사생활이 침해된다고 느끼는 이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미 오픈AI사가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의 개념도. 기업과 공공기관 업무부터 학계까지 기존 인간의 각종 영역을 흔들고 있다. /트위터

미 노동부가 분석해 홈페이지에 공개 중인 비서직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기술 발달로 웬만한 문서 작업 등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비서가 할 일이 점점 감소한다”는 이유에서다. 미 대기업 임원 비서의 연봉은 20만~40만달러(약 2억6000만~5억2000만원)로 결코 적지 않은데 이런 높은 급여는 오히려 약점이 되고 있다. 최근 경기 둔화 조짐으로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연봉이 높은 비서를 포함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WSJ는 “이제 임원들이 직접 커피를 따라 마시거나 스마트폰 앱으로 회의실 예약을 하는 모습이 점점 익숙해질 전망”이라고 했다.

반론도 있다. 비서직군이 갖는 전문성과 인간적 충성심을 기계가 대체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이다. 기업 안팎의 쏟아지는 정보를 선별해 전달하고 판단을 도우려면 임원의 성향이나 그가 처한 상황을 세심하게 이해하는 ‘제2의 두뇌’ 같은 존재가 꼭 필요한데 AI가 아직 그만큼 발달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뉴욕의 한 헤드헌팅 업체 대표는 “프로 골퍼의 캐디처럼 항상 CEO 옆에서 조언을 주면서 기민하게 대처할 최측근은 여전히 경영에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한편 비서가 사라진 일부 기업 임원 중에 직접 잡무 처리를 하면서도 ‘저 사람은 회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가’란 오해를 받을까 봐 비서가 있는 척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WSJ는 “출장 비행기편이나 업무상 식사를 위한 식당 예약을 할 때 본인이 직접 하기보다는 비서가 대신 하는 것으로 설정해야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며, 비서가 없는데도 자신이 비서인 척 예약 업무 등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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