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19 주역들의 이승만 재평가, 나라에 희망 주는 화해와 통합

조선일보 2023. 3. 28.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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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주역 50여 명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 묘소를 참배했다. 63년 전 “이승만 하야”를 외치다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은 이들은 “이 전 대통령의 과오뿐 아니라 공을 다시 봐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잡고, 김일성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키고, 거부하던 미국을 이끌어 한미동맹을 맺었다. 어느 하나라도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농지개혁의 결단을 내리고, 지금의 교육제도를 정착시켰으며, 황무지 같던 나라에 원자력 연구소를 세웠다.

역대 모든 한국 대통령에겐 공과가 있다. 이 전 대통령에겐 집권 연장과 독재라는 큰 과오가 있다. 말기엔 고령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처럼 거대한 공적을 세우고도 철저하게 과오만 부각된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 혼자였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은 이기붕 부통령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반일(反日)주의자였다. 미국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승만 라인’을 그어 독도를 한국 땅으로 지킨 사람이다. 일본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미국의 모든 정책을 대놓고 반대했다. 심지어 재일동포들의 모국 방문조차 막기도 했다.

4·19 혁명의 주역 50여명이 지난 26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이 전 대통령의 반일은 너무 심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경이었지만 한국에선 엉뚱하게 ‘친일’이란 딱지가 붙게 됐다. 일제 때 관료들을 일부 기용했다고 하지만 4·19 후 민주당 정권은 일제 관료들을 더 많이 기용했다. 국내 반대파들은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한 이 전 대통령을 친미주의자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몇 권의 책과 일부 세력의 집요한 선전 공세는 반일주의자를 ‘친일’로, 용미주의자를 ‘친미’로 둔갑시켰다. 이들에게 이승만의 ‘죄과’는 소련과 김일성을 막은 것이겠지만, 한국에서 ‘이승만 죽이기’는 ‘독재’ ‘친일’ ‘친미’가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있지도 않은 ‘불륜설’까지 지어냈다. 반이승만 가짜뉴스가 가장 판친 곳은 수십년간 학교 교실이었다. 지금 청년들은 이승만의 본모습을 전혀 모르는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이 전 대통령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담당 공무원들조차 이승만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건국 대통령이 역사의 패륜아로 낙인찍혔다”고 한 보훈처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부가 어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초대 대통령 기념관이 아직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는 김일성 족벌 아래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누가 부정하겠나. 4·19 주역들의 이승만 재평가는 모처럼 나라에 희망을 주는 화해와 통합의 길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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