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49] 미세먼지 우울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 2023. 3. 28. 03:04 수정 2024. 3. 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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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마음이 따뜻하게 풀릴 것을 기대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오히려 우울하다는 이가 많다. 실제로 미세먼지가 우울증 증가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들이 쌓여가고 있다. 추정되는 원인으로는 미세먼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비정상적 염증 반응 등이 일어나 뇌에 구조적 그리고 기능적 문제가 생기고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미세먼지로 인해 외부 활동 시간이나 대인 관계가 줄어드는 것, 또는 일조량 감소로 생체 리듬에 불균형이 찾아오는 것도 우울증 증가의 이유로 생각되고 있다.

심한 미세먼지에 노출되었을 때 우울증 환자에서 극단적 선택이 증가했다는 우리나라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신체적 활동을 꾸준히 하는 그룹에서는 그 증가가 뚜렷하지 않았다. 신체적 활동은 ‘행동적 항우울제’라 불릴 정도로 마음 건강에 도움이 된다. 미세먼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마음을 보호해 우울증이 극단적 행동까지 가는 것을 차단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순하게 적용하면 ‘미세먼지 우울’ 예방을 위해서는 더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막상 미세먼지 때문에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날짜는 줄어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거기에 걷고픈 마음의 동기 자체도 줄어든 상황이다. 전투 후에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처럼 팬데믹 이후 오히려 무기력감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걷기도 어렵고 걷기도 싫은 상황이다.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여 일간 걷고 온 한 유명 작가와 청중 앞에서 대담할 기회가 최근 있었다. 만만치 않은 걷기 여행을 떠난 이유를 묻자 ‘연결, 자연, 의미’란 키워드로 답을 주었다. 빠른 변화와 지독한 경쟁,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한 단절 등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 그리고 자연이 연결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느껴보는 시간을 갖고자 떠났다고 한다. 상상 이상 극한의 도전이었지만 역설적인 힐링을 경험했다고 한다.

‘연결을 위한 단절’이란 용어가 있다. 내면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불안, 고민이 가득한 현재와 잠깐의 이별이 필요한데 자연을 활용하면 효과가 좋다. 우리 마음에 투사 기능이 장착되어 있어, 미세먼지가 잦아든 봄날, 물끄러미 하늘을 보고 걷다 보면 하늘에 비추어지는 나를 느낄 수 있다. 그 하늘에 비추어진 나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골똘히 삶의 의미를 생각할 때보다 오히려 자연을 통해 나와 연결이 이루어졌을 때 삶의 의미가 더 차오르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험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봄의 미세먼지로 힘들지만 솔루션도 봄이다. 좋은 날에는 봄의 자연을 꼭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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