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라진 절집의 자취 지켜온 큰 나무
사람 떠난 자리에 나무가 남는다. 아름다운 남도의 섬, 진도를 대표하는 노거수인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도 그렇다. 가뭇없이 사라진 사람살이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이룬 보금자리 한 귀퉁이를 버티고 서 있는 큰 나무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사진)’ 곁에는 구암사라는 절집이 있지만, 이 역시 새로 지은 절집이다. 구암사라는 이름은 절집 뒷산에 ‘비둘기 바위’ 혹은 한자로 ‘구암(鳩巖)’으로 부르는 큰 바위가 있어서 붙였고, 이 자리는 흔히 ‘상만사 터’라고 부른다. 마을 이름인 ‘상만리’에 기대어 ‘상만사’라는 절집이 있었을 것으로 본 때문이다. 이름조차 알기 어려울 만큼 오래전에 사라진 절터라는 이야기다.
오래된 흔적이라 해야 절집 앞마당에 있는 오층석탑이 유일하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가졌지만, 실제 조성은 고려 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연원을 바탕으로 고려 초기에서 중기 사이인 1000년쯤 전에는 이 자리에 번창한 절집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오층석탑에서 불과 100m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는 600년쯤 이 자리에서 살아왔다. 옛 절집에 있던 시절에는 석탑의 위치를 기준으로 짐작건대 큰법당 앞 너른 마당이나, 마당 가장자리의 울타리쯤에 있었던 나무다.
나무높이 12m,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6.5m, 뿌리둘레는 7.5m 가까이 되는 이 비자나무는 규모에서 대단히 큰 나무라 할 수는 없지만, 생김새만큼은 옹골차다. 언제 누가 심은 나무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절집의 흥망성쇠를 또렷이 지켜본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나무는 마을의 쉼터이면서 사람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매달렸다가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을 위할 줄 아는 나무라는 이야기다. 절집의 기억을 간직한 ‘절집나무’가 옛사람 떠난 자리에 새 사람들을 품고 ‘정자나무’로 살아가는 세월의 풍진이 아득히 그려지는 풍경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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