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72] 유리와 철로 빚어낸 꽃과 나무
회색빛 거리를 등지고 집으로 들어서면 오히려 그 안에서 작은 숲이 펼쳐진다. 건물 중앙을 관통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날아갈 듯 경쾌하게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 끝에서는 천창(天窓)으로부터 자연광이 내려와 건물 전체를 환히 비춘다. 가녀리지만 탄력 있게 뻗어 나간 기둥과 난간은 벽화와 타일 바닥의 식물 무늬와 어우러져 견고한 건축물이 아니라 마치 꽃나무와 포도 넝쿨 같다. 베이지색, 따뜻한 오렌지색, 차분한 녹두색, 부드러운 갈색으로 이어지는 색조는 초봄의 온기와 늦가을의 노을을 닮았다. 이는 벨기에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Victor Pierre Horta·1861~1947)가 브뤼셀 자유대학의 동료 교수이자 기하학자였던 에밀 타셀의 의뢰를 받아 지은 주택, 오텔 타셀의 현관이다. 기하학자의 집에 기하학적 형태가 거의 없지만, 타셀은 그 집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오르타는 구두 명장이던 아버지로부터 늘 게으르다는 타박을 듣다 건축 현장에 등 떠밀려 일을 하러 갔다. 오르타는 거기서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듯 건축이 천직이라고 믿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건축 학교에 진학한 그는 탁월하게 성장해 벨기에 왕실 건축가였던 지도 교수의 조수가 됐다. 그렇게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가 왕립 온실. 거대한 돔과 반듯한 격자창이 질서정연하게 반복된 구조를 만들어내면서 그는 유리와 철이라는 당시로서는 첨단 자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무엇보다도 유리와 철은 강하고 차갑고 날카롭지만, 이들이 바로 푸른 나무와 연약한 꽃들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보호막으로서 완벽한 성질이 아닌가. 오르타가 오텔 타셀에서처럼 철과 유리로 유연하게 자라나는 꽃과 나무의 형상을 만들어낸 데는 그 온실의 기억이 한몫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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