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에 대한 단상(斷想)

김종화 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2023. 3.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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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 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지난 3월 8일 실리콘밸리은행(SVB)이 18억 달러의 보유채권 매각 손실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SVB 지주사의 주가가 폭락하고, 다음 날 무려 420억 달러(약 55조 원)의 예금이 인출된 후 자금 부족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3월 10일 폐쇄되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리먼 사태 이후 10여 년 만에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타났다.

밀접하게 연관된 국제금융시장 특성상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인 미국 금융시장 불안은 다른 나라에 파급되어 가계, 기업 등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므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우리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가 SVB 지주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 국민이 이번 사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다.

SVB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부문 스타트업을 주된 고객으로 하는 기업금융 특화 전문은행으로서 1983년 설립 이후 전통적 은행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기업들에게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혁신 스타트업들이 코로나 발생 이후 지원된 풍부한 유동성 자금을 예치하면서 SVB의 총예금 규모가 급증했고, 기업 운영자금 용도의 입출금식 예금과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 한도인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예금의 비중이 높았다. SVB는 예금 인출에 대비하면서도 수익성 제고를 위해 현금화가 용이한 장기 국채와 정부보증 주택저당채권 보유 비중을 높였으나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2022년 3월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느낀 기업 고객들이 운영자금 지출을 위해 예금 인출을 늘리면서 보유채권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과 자본 감소로 어려움을 겪게 된 SVB는 유상증자를 통해 대응하고자 하였으나 시장 불안 심리 해소에 실패하고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하면서 폐쇄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SVB 폐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예상하지 못한 대외부문의 금융 불안이 우리나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충격에 대한 대응능력, 특히 손실 흡수 능력을 더욱 높이는 방안의 실행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상황’ 평가에 의하면 금리 인상, 부동산 시장 부진 지속 등으로 경제 전반의 신용위험 경계감이 커지면서 금융불안지수가 위기 단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보유 비중이 큰 우리나라는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금융회사의 부실화 가능성을 면밀히 모니터링 해야 한다. SVB를 모델로 설립이 검토되고 있는 전문은행에 대해서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준비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예금자보호제도의 보완 필요성도 논의해야 한다. 1990년대에 만들어진 예금자보험금 한도, 적용 요건 등을 금융경제 여건 변화, ICT 기술 발전 등을 감안하여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국 등에서는 소규모 은행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뱅크런에 대비하기 위해 예금자보험금 한도와 지급대상을 확대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가능성과 수반되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으므로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금융회사가 고객의 신뢰를 잃는 경우 뱅크런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 고객의 예금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금융시장 불안으로 인해 은행들이 대출에 더욱 신중해지면서 수요 위축 효과가 있음을 감안하여 미국 연준과 영란은행은 종전보다 작은 0.25%p의 금리 인상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이는 여타국 중앙은행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우리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라는 독일 철학자 헤겔의 명언이 생각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나타난 취약점들이 적절한 시기에 보완되고 금융안정을 회복하면서 세계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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