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칠레 ‘주 40시간’이 부러운 우리?
얼마 전 칠레에서 노동시간을 주당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여러 매체에서는 이 소식을 전하며 이번 개정안으로 ‘주 4일 근무’가 가능해졌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루 최대 10시간 근무가 허용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잠깐, 하루 10시간 근무가 허용되므로 주 4일 근무가 가능하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쉬운 설명인데 왜 이해를 못하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질문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칠레의 상황은 ‘주 40시간 노동’을 법으로 정했고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허용된다면, 그래서 어떤 기업이 주 4일 연속 10시간 일을 시켰다면 더 이상은 안 되므로 ‘주 4일 근무’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다르다. 하루 10시간 노동을 시킨다 할 때, 일차 관건은 연장근로 수당을 주느냐, 준다면 통상임금의 몇 배로 주느냐다. 다음 관건은 주말을 포함해 연장 가능한 근로시간이 최대 얼마까지냐다. 몇년 전까지는 한 주가 6일이냐 7일이냐도 중요했다. 한 주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니 일요일 근무는 별도라는 논리가 통했다. 그나마 이제는 ‘한 주는 7일’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인정은 된다.
또 다른 관건은 회사에서 4일 연속 10시간씩 일을 시켜놓고 나머지 하루는 못 쉬게 하면 어쩌느냐, 또는 쉬어야 할 하루를 남겨놓고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회사 문을 닫아버리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물론 일주일 단위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 적용 단위를 6개월, 1년으로 확대한다면 어떨까. 몇주 혹은 몇달씩 집중 초과근무를 하는 게 가능해진다면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전 정부의 ‘탄력근로제’나 현 정부의 ‘주당 최대 69시간’ 개편안에 대해 반발이 큰 맥락이 여기에 있다.
즉, “일정 기간 장시간 근로를 한 뒤에는 그만큼 단축 근로를 하거나 쉴 수 있다”고 정부가 제도 설명을 할 때마다 ‘장시간 근로’만 논란이 되는 것은 정부와 기업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이다. 기업들은 합법적이면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으로 장시간 근로를 시키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 법이 정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제대로 지킬 의지는 없다는 불신, 정부도 적극적으로 제재하고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기업과 정부는 법 규정의 빈틈을 이용해 노동시간을 늘려 적용하는 데 골몰해 왔고, 소규모 현장들은 대놓고 법을 어겨왔다. 그런 현실을 살아온 노동자들에게 왜 불신부터 하느냐고 따질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이 주 40시간제를 도입한 게 거의 20년 전인데 왜 이제 시작한 칠레를 부러워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노동자들에게 ‘주 40시간제’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덧붙이자면, 기왕에 ‘검사 정부’라고 불리는 마당에 노동시간제 논의를 시작할 때도 정부가 그런 태도를 취했으면 어땠을까. “이번 기회에 근로기준법을 안 지키는 노동 현장은 다 찾아내서 확실하게 처벌하겠다”고 천명했다면? 논의 초점이 지금처럼 ‘69시간’에만 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큰 노동계의 지지를, 특히 MZ세대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정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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