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방송장악 프레임을 깨기 위해선
미디어오늘 1394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은 민주당과 가깝다' 혹은 '방송단체의 경우 민주당과 가까운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장악한 경우가 많다'라는 문장이 있다. 최초 이런 문장을 구사한 발화자에게 사실관계는 중요치 않다. 노동조합과 특정 정당이 무슨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냄새를 풍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고전적 의미의 저널리즘 관점에서 팩트는 살아남고 사실관계를 뒤틀어 만든 해석과 주장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지만 프레임으로 굳어지면 그걸 깨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프레임 개념을 만든 조지 레이코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주장한 핵심도 프레임을 재구성하지 않고서는 기존 프레임을 깰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노조=민주당'이라는 도식을 계속해서 기정사실화하면서 얻는 효과를 보자. 이들 관계가 동일시됐을 때 반대급부로써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둘을 하나로 묶어버리면 언론노조는 민주당의 하수인이 되거나 민주당은 언론노조의 전초기지가 된다. 이들이 추구하거나 진행 중인 정책과 제도는 특정 정당과 특정 단체가 짬짜미한 결과로만 치부된다.
민주당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보수 진영의 평가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민주당=언론노조 프레임이다. 지난해 민주당이 방송법을 발의한 시점에서부터 여권과 보수 진영 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강력한 프레임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5월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민주당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영방송 운영위원 25명 추천권이 국회와 방송 단체, 시청자 기구, 언론 학회 등에 분산된다. 방송 단체의 경우 민주당과 가까운 민노총 언론노조가 장악한 경우가 많다”라고 썼는데 넉 달 뒤인 조선일보 9월20일자 2면 우측 하단에 반론보도문이 실렸다. 해당 사설과 관련 “전국언론노동조합 측은 '언론노조가 특정 정당과 가깝다거나 방송 단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알려왔다”는 내용이었다.
반박 근거는 넘쳐난다. 2021년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노조가 반대했다는 점, 국민의힘을 포함해 여러 정당에 정책 협약을 제안했다는 점을 포함해 방송법 개정안 내용 중 추천권을 가진 방송단체가 자율적으로 운용된다는 사실 등이다.
반론보도문이 실리고 난 뒤에도 민주당=언론노조=방송장악 프레임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비슷한 주장을 한 보도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신청 결과 반론보도는 8건, 정정보도 1건, 삭제 2건 등으로 나왔다.
한발 나아가 공영방송 운영위원 추천권 자체가 없음에도 언론노조가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확정적으로 쓰는 행태를 보였는데 “언론노조는 '공영방송 운영위원 추천권도, 공영방송 장악을 꾀한 바도 없다'고 알려 왔다”는 반론보도문(동아일보)까지 실렸다. 반론의 형식이지만 사실상 팩트가 틀렸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보수 언론 단체는 말을 바꿔 “민주당과 언론노조가 개정하려는 공영방송사 지배구조개선법의 핵심 내용은 공영방송사 사장을 선출하는 위원 절대 다수가 친언론노조와 친민주당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라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최초 민주당과 가까운 언론노조가 방송단체를 장악한 경우가 많다라는 말로 소위 미끼를 던져놓고 공영방송 운영위원 추천권을 언론노조가 가지고 있다고 낚시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오자 이젠 친언론노조와 친민주당이라는 용어를 용케 찾아내 프레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 운영위원 추천 단체들이 “언론노조의 입김으로 작동하는 곳”(서울신문)이라는 기발한 표현까지 등장했다. 검증 불가한 입김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건 근거가 없다고 실토하는 셈이다.
진영 논리를 떠나 방송장악 프레임을 깨는 것은 결국 누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막고 있느냐는 반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공영방송을 집권세력 전리품으로 만드는 정치적 후견주의”(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라는 현행 방송법에 대한 진단은 명확하다. 그리고 대안까지 나왔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방송 독립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되물어야 한다. 방송장악 프레임을 깨기 위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첫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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