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봄

2023. 3. 27.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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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활짝 핀 개나리를 봤다.

생활은 늘 너무 번다하고 봄은 늘 너무 짧으니까.

봄의 입장에서라면 아주 어처구니가 없을 것 같기도.

"문을 열고 나와 나를 안아달라" 속삭일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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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춘
눈부신 햇살로 다가와도
본체만체 뒤돌아서니까
이번엔 비가 되어 온다 삐걱이는 복도를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듯 발뒤꿈치를 들고
 
내 손을 잡아달라고 이제 그만
문을 열고 나와 나를 안아달라고
나와 함께 젖어 흐르자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며칠 몇 밤을 그렇게 뜬눈으로
 
그러나 젖는 건
네 파인 눈과 네 텅 빈 가슴일 뿐
오늘도 내 집 몇 바퀴를 돌다
고갤 떨구고 휘적휘적 골목 어귀를
돌아나가는 봄이여
어제는 활짝 핀 개나리를 봤다. 누군가 전송해 준 사진 속에서. 홀린 듯 꽃 곁으로 다가가 여러 번 셔터를 눌렀을 한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잠시 웃기도 했으나… 꽃 한 번 제대로 대면하지 못하고 나는 그만 이 봄을 보낼 것 같은 예감에 조금 씁쓸해졌다. 생활은 늘 너무 번다하고 봄은 늘 너무 짧으니까. 봄의 입장에서라면 아주 어처구니가 없을 것 같기도. “눈부신 햇살”마저 “본체만체 뒤돌아서” 골몰하는 그 일이 대체 얼마나 크고 중한 것이냐 따져 물을 것 같기도. 늘 그렇듯 나는 민망해지고 말 것이다. 조만간 비가 되어 올 봄을 생각한다. “문을 열고 나와 나를 안아달라” 속삭일 봄을. 그때는 이 계절의 귀한 주문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지.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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