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휴일·밤낮없이 20여년 ‘제주 최장수 이장’[신(新)이장열전]

박미라 기자 2023. 3. 2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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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제주시 하가리 장봉길 이장
“무급이지만 이장을 ‘본업’ 여겨
주민 불편 해소하는 게 내 역할”
마을 공동주택 지어 초등생 유치
폐교 위기서 ‘본교’ 승격 경사도

이쯤 되면 직업이 이장이다.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장을 맡고 있는 장봉길씨(69·사진)는 40대 중반이던 1998년, 제주에서 최연소 나이로 이장에 선출돼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건강 문제로 쉰 4년 정도를 제외해도 20년 이상 이장직을 맡은 셈이다. 제주에서는 이제 ‘최장수 이장’으로 꼽힌다. 올해는 제주도이장단협의회장도 맡았다.

장 이장은 스스로도 “직업이 이장”이라고 했다. 그는 “이장을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무급이지만 이장을 ‘본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주민들이 주로 일과 후나 주말에 이장을 찾는 만큼 365일 밤낮도, 휴일도 없는 셈 친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 7시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이상이 있는 곳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장 이장은 “주말 아침이면 관광객들이 렌터카에서 던진 음식물 봉지와 기저귀 등 창피해서 말할 수조차 없는 별의별 쓰레기로 도로 주변이 난리”라면서 “다른 기관 등에 전화해 ‘치우라’고 하지 않고 내가 먼저 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이장으로 활동한 만큼 성과도 많다. 하가리 더럭초등학교는 다른 농촌지역 분교가 그렇듯 한때 폐교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장 이장이 주민들과 함께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인 끝에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하는 기적을 이뤘다.

장 이장은 “더럭분교는 10여년 전만 해도 학생 수가 10명 안팎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처했다”면서 “학교를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학생 유치를 위해 공동주택을 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동주택은 마을 소유 토지를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농어촌 소규모 학교 육성지원사업 지원금을 더하는 방식으로 건립했다. 현재 총 20가구다.

저렴한 임대료로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을 입주민으로 맞이한 공동주택은 제주 이주 열풍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학생 수가 늘면서 더럭초는 2018년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하는 경사를 맞았다. 장 이장은 “초등생 자녀를 위한 공동주택은 여전히 인기 있다”면서 “더럭초는 현재 다목적 강당과 급식실, 특별교실을 증축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가리는 인구가 늘어난 만큼 이주민 비중이 높다. 중산간 농촌마을에 새로운 인구가 대거 유입되다보니 ‘가로등이 없어 어둡다’ ‘수압이 약하다’ 등의 민원도 많아졌다.

장 이장은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을 해소하는 게 이장의 역할”이라면서 “중요한 건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을에 공동주택 수십가구가 들어선다고 하면 아이들 역시 많이 유입되는 만큼 미리 가로등이나 어린이 통행 등을 위해 신경을 쓰는 식”이라면서 “더럭초 주변 어린이 통행로 설치를 우선 추진했다. 학부모들의 호응이 컸다”고 말했다.

하가리는 앞서 마을 단위 액화석유가스(LPG) 배관망 구축사업을 추진해 LPG 소형저장탱크도 설치했다. 최근 연료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가스나 등유를 개별 주문해야 하는 다른 농촌 마을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연료를 공급받는 것이다.

부지런한 행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가 현재까지 받은 장관 표창만 6개에 이른다. 장 이장은 “교통사고가 빈번한 도로의 선형을 개선하고 확장한 사업부터 마을 내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로를 정리한 것 등 많은 일이 있었다”면서 “주민이든 그 누구든 설득하고 대화하면 아무리 복잡한 민원과 갈등도 해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글·사진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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