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의 저널리즘책무실] 취재보도준칙, ‘좋은 저널리즘’의 이정표

이종규 2023. 3. 2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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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책무실]

2007년 1월, 한겨레신문사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취재보도준칙 선포식을 연 뒤 준칙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뜻으로 서명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한겨레>는 2007년 국내 신문사 가운데 처음으로 ‘취재보도준칙’을 제정했습니다. 1988년 창간과 동시에 국내 언론 최초로 윤리강령을 제정한 데 이어, 한겨레를 ‘좋은 저널리즘’으로 이끌 두번째 등대를 세운 것입니다. 당시는 언론계에 신뢰의 위기가 본격화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신문에 대한 불신이 컸습니다. 한겨레 취재보도준칙 전문에도 이런 위기의식이 담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은 안팎으로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거친 취재 행태, 자의적인 기사 판단과 편집, 균형을 잃은 논조, 편집권에 대한 안팎의 압력과 간섭, 독자의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독선, 공익과 사익의 혼동 등이 만연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언론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겨레신문 또한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한겨레는 그해 신년호 1면에 준칙 제정 계획을 알리며 “기본으로 돌아가서 신문의 위기, 신뢰의 위기를 앞장서서 헤쳐나가겠다”고 썼습니다. 준칙이 완성된 뒤에는 기자와 논설위원들이 편집국에 모여 준칙 선포식을 열었습니다. 준칙 전문을 크게 확대해 기자들이 그 위에 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천 의지를 다지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차 잊힌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검찰의 ‘먼지털기 수사’ 보도에서도 취재보도준칙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한겨레에 대한 신뢰는 식어갔습니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해마다 실시하는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방송 포함)로 한겨레를 꼽은 응답자 비율이 2009년 19.2%에서 2014년 8.4%로 반토막이 났습니다. 2018년엔 3.3%로 더 줄었습니다. 순위도 2009년 3위에서 2018년 7위로 떨어졌습니다.

2019년은 한겨레가 최악의 신뢰 위기를 맞은 해였습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 보도를 두고 한쪽에선 ‘한겨레가 ‘조중동’과 차별성도 없이 검찰 주장만 받아쓴다’는 비판이, 다른 쪽에선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보도한다’는 질책이 동시에 쏟아졌습니다. 한겨레가 일관된 원칙이나 기준 없이 우왕좌왕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준 탓이 큽니다. 10여년간 꾸준한 실천을 통해 취재보도준칙을 ‘보도 규범’으로 정착시켰다면 오해와 불신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보 사태를 겪은 ‘윤석열 검찰총장 별장 접대’ 기사(2019년 10월11일치 1면)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의 아픈 경험을 계기로 한겨레는 그동안 문헌으로만 존재하던 취재보도준칙을 저널리즘 원칙으로 재정립하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해 10월 ‘취재보도 윤리 및 기준 점검을 위한 티에프(TF)’를 꾸리고, 수개월 작업 끝에 취재보도준칙을 전면 개정했습니다. 준칙에는 ‘진실 추구’, ‘공정과 균형’, ‘정직과 투명’, ‘시민과 독자 존중’ 등의 원칙을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구체적인 지침이 제시돼 있습니다. 준칙 이행을 점검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저널리즘책무위원회’를 두고, 회사에 저널리즘책무실도 신설했습니다. 이번에 세번째 책무실장으로 제가 일하게 됐습니다.

한겨레는 2020년 5월에는 ‘윤석열 별장 접대’ 기사에 대해 ‘취재보도준칙에 비춰, 사실 확인이 불충분하고 과장된 표현을 담은 보도’라고 판단하고 1면에 사과문을 실은 바 있습니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전 한겨레 기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내는 월간지 <신문과 방송> 2020년 3월호에 “(한겨레의) 오늘의 혼란과 위기 뒤에는 2007년 제정된 취재보도준칙이 ‘죽은 문장’이 돼버린 현실이 있다”고 썼습니다.

취재보도준칙에 대한 외부 전문가의 평가는 대체로 좋은 편입니다. 사외 책무위원으로 활동했던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장은 한겨레 구성원에게 보내는 ‘책무실 통신’에서 “언론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이 좋은 저널리즘의 수행인가 그 기준을 제시해야 할 때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을 읽힌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건 실천입니다. 아무리 좋은 규정이라도 취재와 보도 과정에 스며들지 않는다면 장식품일 뿐입니다. 준칙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신뢰의 한겨레’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지 3년이 다 돼가지만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다고 하기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정 센터장은 취재 현장에서 판단과 선택의 순간에 취재보도준칙이 자연스럽게 작동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근육이 기억해 반응하듯 말입니다. 차근차근 근육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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