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명 완전 경선에서 뽑힌 윤경림도 후보 사퇴...KT 새 CEO 뽑을 답이 없다
CEO 공백 사태…사내이사 선임안도 폐기
구현모 임시 CEO·사장단 비상경영 들어갈 듯
KT 새 대표이사(CEO) 후보로 뽑혔던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후보에서 물러났다. CEO 선출 과정을 두고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여권에서 비판을 쏟아내고 보수 시민단체의 고발에 이어 검찰 수사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등 회사 바깥에서 거세지는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다. CEO를 뽑지 못해 '경영 공백'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된 회사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윤경림 "새로운 CEO 선출해달라"
KT에 따르면 윤 사장은 27일 이사회에 CEO 후보자 사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7일 CEO 최종 후보에 뽑힌 지 21일 만이다. 그는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CEO가 선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사퇴 이유에서 밝힌 '주요 이해관계자'는 자신의 CEO 선임을 반대해 온 1대 주주 국민연금(지난해 말 기준 10.1%)과 2대 주주 현대자동차그룹(7.7%) 등으로 해석된다.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언급한 대목에서 다음 CEO 선출 전까지 별도의 지배구조 개선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회사 측은 아직까지 별다른 후속 대책이 마련되진 않았다고 전했다.
윤 사장은 22일 이사회 조찬 자리에서 처음 후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는데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더 버티면 KT가 망가질 것 같다"며 부담감을 토로했다. 이사들이 '주총까진 버텨달라'며 적극적으로 말려 닷새가량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지만 결국 내려놨다.
31일 주총 예정대로…사외이사 선임 예측불가
주주총회(31일)를 나흘 앞두고 CEO 공백 사태를 마주하게 된 회사 내부는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우선 주총까진 현직 구현모 대표 체제로 위기에 대응한다. 구 대표와 윤 사장은 주총 전까진 사내이사로 활동할 수 있다.
주총은 예정대로 진행되지만 '속 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중요했던 윤 사장 CEO 선임안 표결이 무산됐고 회사 정관에 따라 윤 사장이 추천한 사내이사 두 명(서창석 KT 네트워크부문장·송경민 KT SAT 대표)을 승인하는 안건도 자동 폐기됐다.
사외이사 세 명에 대한 표결(강충구·여은정·표현명)은 예정대로 이뤄진다. 단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순 없다. 1대 주주 국민연금과 2대 주주 현대자동차그룹 등은 사외이사 선임안에도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지분율 33%가량을 차지하는 국내 소액주주 중 일부는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KT 소액주주 커뮤니티를 이끄는 A씨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외압에 반대해 (사외이사 표결 관련) 찬성을 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외압 물러가라", "어이없는 상황에 주식을 추가로 샀다"는 주주들의 인증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분율 44%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표심은 예측이 쉽지 않다.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 의결권 자문기관 '빅2'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사외이사 선임안에 각각 반대와 찬성을 권고하는 엇갈린 의견을 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두 기관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주총 표 대결 결과도 오리무중이다.
혼돈의 KT…주총 이후가 더 큰 문제
혼란스러운 상황은 주총 이후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현재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이번 주총을 끝으로 구 대표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공식적인 CEO 자리는 공석이 된다. 구 대표가 임시 CEO 역할을 수행하거나 사장단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로 전환된다. 두 경우 모두 임시 경영 상태로, 투자나 신사업 추진 등 굵직한 의사 결정은 어렵다.
이사회 구성도 문제다. KT는 최대 열한 명(사내이사 세 명·사외이사 여덟 명)까지 이사를 둘 수 있다. 윤 사장 사퇴로 주총 이후엔 사내이사 3자리가 모두 공석이 된다. 만약 사외이사 세 명에 대한 선임안까지 부결될 경우 열한 명 정원인 이사회 중 단 세 명만 채워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현재KT 정관에는 이사회 구성 효력을 인정받기 위해 최소 몇 명의 이사가 선임되어야 하는지를 정해둔 규정이 없는 상태다. 다만 상법에는 기업 이사 정족수를 3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안이 부결될 경우 KT는 이사회 구성을 위한 최소 인원만 남겨두게 된다.
이사회에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회사 규정은 임명된 이사의 과반이 참석하고 이 중 절반 넘게 찬성해야 한다. 사외이사가 세 명만 남게 되면 두 명의 이사가 모여 단 한 명만 특정 사안에 찬성해도 안건이 통과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다음 CEO 선출은 더욱 어려운 과제다. 완전 공개 형식으로 진행된 경선에서 뽑힌 윤 사장까지 낙마하자 회사는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CEO 선출 방식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구체적 대안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KT는 앞서 CEO에 지원한 후보자들의 구체적 경력은 물론 심사방식까지 모두 공개했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이 34명 외부 지원자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며 잡음을 줄이려 애썼음에도 외부 압력이 거셌던 만큼, 다른 후보자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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