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마르는 美·유럽… 글로벌 유동성 공포 커진다 [美 은행發 경기침체 불안]
美 은행 예치금 1주일새 128조 급감
대형은행·MMF·금으로 자금 이동
달러 조달 어려워져 무역도 위축
■은행 못 믿어…돈줄 말라
미국의 중소은행들은 지난 10~12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뱅크(SVB)와 시그니처은행이 연쇄 파산하면서 불똥이 튈까 걱정하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재정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위험한 대출을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산하 미니애폴리스 연방은행의 닐 카시카리 총재는 26일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은행권의 부담이 얼마나 광범위한 신용 경색으로 이어지고 경제를 둔화시킬지 불명확하다"면서 "매우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빌려주는 쪽이 주머니를 닫는 동시에 돈을 빌리는 사람도 몸을 사리고 있다. 연준이 물가를 잡는다며 이달에도 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22일 기준 금리를 0.25%p 올려 4.75~5.00% 구간으로 인상한다며 은행권 위기를 의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 굉장히 많은 위원들이 이야기한 부분은 바로 가계와 기업에 대한 신용 위축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빌려줄 돈 역시 줄어들었다. 연준에 의하면 미 은행권의 예치금은 지난 9∼15일 일주일 동안 984억달러(약 128조원) 줄어들어 17조5000억달러(약 2경2000조원)를 기록했다. 이는 약 1년 만에 최대 규모의 감소폭이다.
미 언론들은 중소은행 예금주들이 은행에서 돈을 빼 머니마켓펀드(MMF)나 금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한다고 전했다. MMF는 초단기 우량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원금손실 위험이 적은 데다 입출금이 비교적 자유로워 안전한 현금성 자산으로 통한다.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데이터 업체 EPFR을 인용해 이달 들어 미 MMF에 유입된 자금이 2860억달러(약 371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중소은행에서 돈을 빼 대형은행으로 보내는 예금주도 있다. 연준에 따르면 지난 9~15일 JP모건, 웰스파고 등 상위 25개 은행의 예치금은 670억달러 가까이 늘어난 반면 중소은행 예금은 1200억달러 줄었다.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대형은행의 대출 조건이 중소은행에 비해 까다로운 만큼, 돈이 대형은행에 몰릴수록 신규 대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카시카리 총재는 "긍정적 측면으로는 예금 인출 속도가 둔화하는 듯하고 중소 및 지방은행들에서 신뢰가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과 대출자들이 불안해해서 자본시장이 계속 닫혀있게 되면 경제에 더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美 위기, 세계로 번질 수도
은행 위기는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유로존(유로 사용 20개국)의 유럽중앙은행(ECB)은 이웃한 스위스 2위 은행이던 크레디트스위스(CS)가 SVB 사태 직후 유동성 위기 끝에 합병되자 사태가 유로존으로 번질까봐 걱정하고 있다.
루이스 데 긴도스 ECB 부총재는 26일 인터뷰에서 "유로존의 신용 대출 기준이 더 엄격해질 것으로 본다"면서 "그 결과는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이 모두 둔화되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업계 전문가들을 인용해 유로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성장이 위험하다고 예측했다.
미 코넬대학의 에스와르 프라사드 무역 정책 및 경제학 교수는 "(현재가) 잠재적으로 세계 경제에 아주 위험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WSJ는 미국에서 돈줄이 마르면 결국 세계적으로 달러 조달이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싱가포르 마누라이프자산운용의 수 트린 국제 거시전략 공동대표는 "달러는 세계 무역과 금융, 나아가 세계 성장의 수레바퀴에 기름칠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이 달러를 구하기 어려워진다면 달러 빚이 많은 국가의 경우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신문은 달러로 거래하는 각종 수입품 및 원자재 거래 또한 위축된다고 지적했다. WSJ는 2007년 말~2009년 중반 국제 경제 위기 당시 세계 무역 규모 역시 18%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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