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예금보호한도 올리되 부작용 막아야

2023. 3. 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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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홍 금융부동산부 금융팀장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절대 망하지 않을 것으로 인식됐던 은행들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국민들이 어렵게 모은 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한해 전에 설립된 예금보험공사(예보) 덕분이다.

1995년 예금자보호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이 법에 따라 설립된 예보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 예금의 지급을 보장함으로써 예금자를 보호하고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보 설립 당시에는 외환위기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설립 1년여만에 부실 은행에 경영정상화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제 역할을 해냈다.

지난 2011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부실이 터지면서 저축은행들이 무더기 영업정지를 맞은,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예금자보호제도의 필요성이 입증됐다. 당초 은행권 중심으로 설립된 예보는 외환위기 이후 증권사, 보험사, 저축은행 등 각 금융권의 예금보험기금을 통합해 새롭게 출범했다.

예금자보호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교수, 필립 딥비그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 등 3명은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은행 보호를 위한 정부 역할이 위기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규명한 공로다. 특히 다이아몬드와 딥비그 교수는 은행의 붕괴를 초래하는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 예방을 위해 예금자보호제도가 필요하다는 최초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예금자보호제도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지만 보호 한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예금보험제도는 도입 당시 2000만원이었으나 외환위기 발생 직후에 2000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예금 전액을 보장하기도 했다.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금융거래의 안정성 유지를 위해서다. 이후 2001년 부분보호제도로 복귀하면서 1인당 한 금융회사에서 5000만원 한도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정부가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에 대한 예금 전액 보호 조치를 내놓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20년 넘게 5000만원에 머물고 있는 예금보호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기도 했다.

주요 국가의 예금자보호 한도를 보면 우리나라 예금자보호 한도는 진작 올렸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2000만원이었던 한도를 2001년 5000만원으로 높인 이후 23년째인 지금까지 5000만원에 머물고 있다.

미국의 예금자보호 한도는 25만달러(약 3억2500만원)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호주는 25만호주달러(약 2억1600만원)로 뒤를 잇는다. 유럽연합(10만유로·1억4000만원), 영국(8만5000파운드·1억3500만원), 일본(1000만엔·9900만원), 캐나다(10만 캐나다달러·9500만원), 중국(50만위안·9500만원) 등도 우리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한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1년 대비 현재 3배가량 늘었고, 예금보험 대상인 부보예금 총액은 550조원에서 2534조원으로 5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도 한도 상향 필요성으로 거론된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 대비 은행업권 보호한도 비율은 1.3배로 미국(3.6배), 영국(2.6배), 일본(2.3배)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다만 전액보호 등 지나치게 높은 한도는 자칫 예금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 외환위기 시절 한시적으로 전액 보호를 결정했다가 금융회사들이 무분별하게 고금리 특판에 나서면서 이 조치가 조기 종료된 전례도 있다. 금융소비자들이 금융사의 신용도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높은 금리만 찾게 되면 오히려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금자보호 한도가 상향되면 금융회사들이 예보에 납부하는 예금보험료도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예보는 차등보험료율제도 고도화를 통해 납부 유인 체계를 강화한다는 계획이지만, 금융회사들은 인상된 보험료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킬 가능성도 크다.

이에 따라 예보 한도를 무턱대고 올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논란만 확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오는 8월까지 개선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인데 묘안이 담기길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금융회사들이 부담하는 예금보험료 상승분이 금융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강길홍 금융부동산부 금융팀장 sliz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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