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칼럼] 토착왜구와 토착빨갱이

손성진 2023. 3. 2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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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우파가 꼭 친일이 아니었고 좌파만 반일도 아니었다.

우파 김구나 좌파 무정도 반일에서는 일치했다.

우파=친일, 좌파=반일로 갈라치는 현 좌파들의 도구가 '토착왜구(토왜)'론이다.

토착왜구를 환생시키며 좌파는 우파를 도매금으로 매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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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칼럼] 토착왜구와 토착빨갱이
원래는 우파가 꼭 친일이 아니었고 좌파만 반일도 아니었다. 우파 김구나 좌파 무정도 반일에서는 일치했다. 우파=친일, 좌파=반일로 갈라치는 현 좌파들의 도구가 '토착왜구(토왜)'론이다. 토왜는 좌우와 무관하게 일진회 같은 매국노를 지칭하던 말이었을 뿐이다. 그때 토착왜구가 있었다면 '토착빨갱이'도 있었다. 일제는 박헌영 같은 공산주의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좌파가 강한 반일, 일제 극혐이 된 한 까닭이다. 토착왜구를 환생시키며 좌파는 우파를 도매금으로 매도했다. 우파라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다 동의하지 않는다. 독도 땅을 밟은 MB(이명박 전대통령)를 토착왜구로 부르진 못한다.

'굴욕외교'의 전사로 토착왜구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강제징용 제3자 변제에 대한 총공격에서다. 하지만 싫든 좋든 '빼박'의 사실들이 있다. 한일회담의 합의는 청구권 협정으로 일괄처리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75년부터 약 7만5000건에 대해 무상 3억달러의 약 1%를 지급했다. 노무현 정권 때도 재조사 후 7만2631명에게 약 6330억원을 보상했다.

우리 대법원이 국제법적 약속을 도외시하고 일본 기업에 배상 판결을 내려 일이 틀어졌다. 따지자면 전 정권들에게 1차 책임이 있다. 물론 책임론에서 일본을 제외할 순 없다. 빙빙 돌리는 언술은 분통을 폭발시킨다. 그렇다고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0년 일왕은 "통석(痛惜)의 염(念)"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1993년 고노 담화는 "종군 위안부로서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했다.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무라야마 담화는 진일보했다. 그러나 만족시킬 만한 진정성은 부족했다. 다음 정권들은 그마저 부정하며 감정의 골을 키웠다.

작금에 세계의 혼란은 겹겹첩첩이다. 동포 집단 북한의 발호가 가장 심각하다. 갈피 잡기가 중요해졌다. 제국주의 일본은 과거의 적이다. 21세기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한배의 동승자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로 위협하는 현존 주적(主敵)이다. 친북, 종북 칭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도 북을 추종하는 좌파 세력이 존재한다. 적과 내통하는 무리의 엄존을 통탄하는 게 친일 공방보다 먼저다. 토착왜구가 문제라면 토착빨갱이는 괜찮은가.

"일본에 퍼주기만 했다"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공격했다. 그 말대로라면 김대중 정부 이후의 북한 지원과 남북협력도 부정해야 마땅하다. 평화 교섭을 할 이유는 더욱 없다. 남북대화의 첫마디는 동족 학살에 대한 사과여야 한다. 쌍방울을 통한 대북 송금은 또 어떻게 설명할 건가. 친북이 친일을 나무랄 자격은 없다.

역사의 강은 도도히 흐른다. 피로 물든 과거도 떠내려가고 맑은 강물이 밀려온다. 원수가 절친이 되고 반대로도 되는 변화무쌍한 국제사회다. 히틀러 치하에서 극렬하게 저항한 프랑스도 이젠 독일의 친구다. 일본과 한국에 양국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상대 문화를 만끽하는 이들에게 반일, 혐한은 딴 나라 얘기다.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치욕의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줏대 상실이지만, 과거의 새장 속에 스스로 갇히는 것도 미래 국익에 반한다. '태극기'의 확성기보다 죽창가 타령이 더 시대착오적이다. 국력을 키워나가면 언젠가 일본이 자청해서 무릎을 꿇는 날이 온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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