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늘리되 나쁜 의료제도 함께 손봐야

한겨레 2023. 3. 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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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의사 부족 진단과 해법’ 연속기고 ④

김윤 |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서서히 붕괴할 것이다.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와 지방병원 응급실에서 시작된 작은 균열은 대도시 응급환자와 지방 모든 입원환자 진료로 퍼져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2026~2028년 사이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유명 대학병원 분원 6000병상이 수도권에 문을 여는데, 이들 병원이 지방 대학병원 의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 붕괴는 빠르게 확산할 것이다.

하루빨리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 늘어난 정원으로 의사가 부족한 지방과 의료취약지에서 일할 의사를 배출해야 한다. 전체 의대 정원의 3분의 2 이상을 해당 지역 출신으로 선발하도록 하고, 매년 500명 정도를 졸업 뒤 의료취약지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지방대 의대 신입생 10명 중 4명이 수도권 출신인 선발 방식으로는 의대 정원을 늘려봤자 지방 의사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의사 수급 불균형과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나쁜 의료제도를 손봐야 한다.

첫째, 기피 과목처럼 실제 일하는 의사는 부족하지 않은데 배출된 전문의가 엉뚱한 곳에 가서 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환자 수요에 맞게 응급센터, 심장병센터, 분만센터를 지정해 부족한 의사가 여러 병원으로 분산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병원 진료 기능을 분화시켜 수요 대비 약 2배 수준인 공급 과잉을 해소하면 전문의를 2배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환자 수에 비례한 전문의 수 법적 기준을 마련해, 병원이 기피 과목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힘든 수련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된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의사가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보거나 미용·성형을 하는 개원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전담간호사를 적극 활용하면 의료의 질도 좋아지고 의료비도 줄일 수 있다. 미국 의과대학협회 보고서를 보면, 이른바 ‘피에이’(PA)라고 불리는 전담간호사가 기존 의사 업무의 15% 이상을 대신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공공연하게 의사 역할을 일부 대신하고 있는 전담간호사를 합법화하면, 의사를 6만~8만명이 아니라 절반 수준인 3만~4만명만 늘려도 된다. 전체 의료 인력이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내버려둔 채 의사만 늘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셋째, 의사는 못 늘리면서 병상만 계속 늘릴 수 있는 이상한 제도를 고쳐야 한다. 최근 5년 동안 실제 병상이 부족한 큰 종합병원 병상은 별로 늘지 않았고, 이미 넘쳐나는 작은 병원과 요양병원에서 병상이 늘었다. 지역적으로는 이미 큰 종합병원이 많은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주로 큰 종합병원이 늘고 있다. 병상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는 의료제도가 의사 부족 문제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최악의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정부는 의사도 늘리고 나쁜 의료제도도 개혁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우리 사회 기득권의 카르텔 때문이다. 장관, 국회의원, 언론을 포함한 대한민국 기득권 카르텔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와 병원 편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의사를 못 늘리고, 선진국보다 3배나 많은 병상도 규제하지 못하고,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주면서도 병원이 의사를 더 고용하게 하지 못했다. 지난 정부에서도 의료취약지에서 일할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의대 정원을 400명 늘리겠다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응급실과 중환자실까지 비운 의사들의 강력한 파업에 정부는 슬그머니 물러서고 말았다.

하지만 의사 편을 들어온 기득권 카르텔도 머지않아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 같다. 의료비가 빠르게 늘어나 10년 안에 국민 소득 대비 의료비가 미국 수준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의료비 때문에 국민의 삶과 경제가 함께 추락하는 때가 오면 그들도 의사와 병원을 편들기 힘들어질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가 바닥을 치기 전에 개혁에 나서는 것이 더 슬기로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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