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최대 실적 유감…사내 유보 강제해야

한겨레 2023. 3. 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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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은행들이 ‘돈 잔치’를 벌인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15일 시민들이 주요 은행 현금인출기를 지나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안재환 |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우리 금융시장에서 금전소비대차라는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이 좋은 실적을 거둔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대 실적의 원인과 은행이 그 이익을 처리한 행태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은행의 이익은 대출과 예대마진( 예금 · 대출 금리 간 차익 )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대출의 증가는 우리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와 유사하거나, 이를 약간 초과하면서 그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은행의 대출 증가 속도는 과도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신용은 이미 명목 국내총생산을 초과하는 수준이다. 이는 대출을 받은 차주들의 소득 수준을 초과한 대출을 실행했음을 암시한다. 대출은 차주가 빌려 간 돈을 상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실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상환능력을 초과한 대출은 이들을 파산에 이르게 하고, 빌려준 돈을 종국적으로 돌려받을 수 없는 은행 또한 위험에 처하게 한다.

이러한 대출의 급증에는 정부의 선한 의도가 예기치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있다. 정부는 은행과 차주가 ‘상환능력에 기반한 대출’이라는 원칙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 이른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고, 지난해 7월에서야 이를 본격 시행했다. 따라서 국내 대출의 상당수가 주택가격에 비례해 대출한도가 증가하는 주택담보비율(LTV)에 기반해 이뤄졌다. 이 제도는 집값이 급상승하는 시기에는 대출한도를 매우 증가시키기 때문에, 차주가 소득으로는 갚을 수 없는 ‘약탈적’ 대출을 양산할 수 있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목표로 했던 전세자금 대출에 대한 정부 보증 또한 가계신용의 급증에 일조했다는 비판이 있다. 정부 보증 대출은 은행으로서는 무위험에 가까울 수 있으나, 미국 국책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파산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위험 요인을 품게 된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이미 가계신용과 관련한 위험이 매우 중대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미국과의 금리 역전 현상을 장기간 감내하면서 국내 금리 인상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금리 역전이 반드시 외환시장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채권과 주식시장의 자금 이탈에 따른 상당한 위험 요인을 우리가 이미 부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에 더해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 39조 원을 투입해 고금리에 고통받고 있는 차주들이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로 전환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이는 가계대출에 대한 정부 당국의 심각한 우려를 보여준다.

은행의 이익에 대한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면 배당, 성과급, 희망퇴직금 등과 관련해 은행이 최근 보여준 행태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물론 기업의 이익은 주주에게 속하는 것이고 이들의 투자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근로자 또한 그 이익을 공유할 당연한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은행의 이익에 잠재한 상당한 수준의 신용위험을 고려할 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는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이들의 과점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 수를 늘리는 것은 오히려 예금을 관리할 충분한 능력이 없거나, 은행업과는 전혀 다른 위험 성향을 가진 자본의 시장진입을 용인함으로써 시스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보다 금융당국은 이익이 과도하고, 상당한 신용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이익의 일부를 은행 내부에 유보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은행 자신도 외환위기 당시 금융위기로 온 국민이 고통받아야 했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권을 지켜냈던 사실을 다시금 진지하게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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