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시절로 돌아간 ‘통일교육지침’

한겨레 2023. 3. 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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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통일교육 기본방향. 국립통일교육원 제공

[왜냐면] 이병호 | 남북교육연구소장·교육학 박사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은 지난 14일 통일교육지침서인 ‘2023 통일교육 기본방향’에 관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2018년 8월 문재인 정부가 ‘평화·통일: 방향과 관점’을 발표한 지 5년 만이다. 올해부터 학교 통일교육은 이 ‘지침’을 따라야 하고, 2025년부터 학생들이 사용할 교과서 집필 기준과 개발·심의 기준도 지침을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4조),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제66조)고 명시하고 있다. 또 2022년 7월 일부 개정된 통일교육지원법은 ‘통일부장관은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에 통일교육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제6조)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과 법률, 남북관계 변화와 바람직한 통일교육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지침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번 지침은 1987년 10월 마지막으로 개정돼 이후 남북관계의 변화를 전혀 담지 못한 ‘헌법’의 관련 조항에 기초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이번 지침 ‘통일교육의 중점방향(10개 항)’ 가운데 ‘1.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를 들 수 있다. 현행 헌법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제3조)는 조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1991년 남북이 합의로 유엔에 동시 가입한 사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이번 지침에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란 내용이 포함’(<연합뉴스> 14일 보도)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4조)는 헌법 조항은 우리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89년 9월11일)을 담지 못한 내용이다. 그뿐 아니라 1991년 남북고위급회담 합의로 1992년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다섯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개성 관광, 9·19 군사합의 등도 담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지침은 36년 동안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노력을 무시하고 36년 전 시절로 돌아가는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번 지침 가운데 ‘북한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이란 내용은 즉시 삭제해야 한다. 안보는 국가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개념이나 이 내용은 안보교육에 필요한 내용이지 통일교육에 적합한 내용이 아니다. 안보를 위한 행동과 교육은 성인에게 필요한 것이지, 학업에 열중하는 초·중·고 청소년이 할 수 있는 활동은 아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친구를 사귈 때 경계하면서 사귀어라”고 한다면, 자녀는 ‘사귀지 말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 이번 지침은 “4)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통일교육지침서가 2000년 개발된 뒤 노골적으로 ‘집권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을 통일교육 내용으로 공개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올바른 통일교육 지침은 단기적 집권 정부의 대북·통일관이 아닌 장기적 보편적 목표와 내용이 돼야 한다.

넷째, 이번 지침은 일반 국민은 물론 통일교육 연구자나 교육자들조차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상태에서 발표했다. 이래도 괜찮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교육원은 ‘2023 통일교육 기본방향’을 2만부 제작해 각급 학교와 교원양성기관, 교육훈련기관, 통일교육 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다. 36년 전으로 돌아간 통일교육지침은 속히 철회하거나 수정·보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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