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美 SVB 파산, 2008년 금융위기 후속편"

최수문 기자 2023. 3. 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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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 레시피’ 들고 방한한 장하준 교수
장기간 초저금리가 시장 왜곡 불러
무역구조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어
미중 한쪽 편들기 말고 실용적 접근을
빈·부국 가르는 것은 생산성 차이
식재료 소재···경제 편견 해소 도움되길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가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더욱 실용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미중 가운데 한쪽을 편들고 다른 쪽을 반대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현명한 방식이 아닙니다.”

27일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소개하는 기자 간담회에서 미중 전략 경쟁의 시대에 한국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장 교수가 새 책을 들고 독자들과 만나는 것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2014년)’ 이후 10년 만이다. 질문은 일단 현재 한국이 맞닥뜨린 국제 현실에 집중됐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돌파구에 대한 질문에 장 교수는 미국 일변도의 정책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거칠게 공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반도체 외에 사실 미국에 생산 기반이라는 것은 없어졌고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오는데 이런 구조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결국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에 강경책을 구사하는 일본과 우리나라는 중국에 대한 입장이 크게 다르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일본은 경제에서 무역의 비중이 15%로 중국을 배제해도 경제 운용이 가능한 나라”라며 “그렇기 때문에 무역 비중이 50% 이상이고 중국과 연계가 많은 한국과는 입장을 달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상 경제와 국제 관계에서 태도를 바꾸면서 실용적으로 접근한 미국을 오히려 한국은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논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놓았다. 장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가 구조 개혁 없이 0%대 초저금리로 대응한 것이 최근 금융시장의 왜곡을 부른 것”이라며 “당분간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금융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0%대 금리를 10여 년간 유지한 것은 17세기 영국에 근대적인 중앙은행 제도가 만들어진 후 처음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금융과 주택 시장에 거품이 잔뜩 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이 충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는 챗GPT 등 인공지능(AI)과 자동화 등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장 교수는 일단 “챗GPT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다만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더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역사가 자동화의 역사고 자동화를 통해 수많은 직업이 없어졌지만 대신 또 그에 맞는 많은 일자리가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19세기 초 미국의 방직업에서 자동화로 인해 일거리 98%가 줄었지만 옷값이 싸지고 소비가 늘어나면서 방직 노동자는 오히려 4배가 됐다는 사례를 들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장 교수의 열여덟 번째 책이다. 저자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열여덟 가지 재료를 소재로 삼아 경제와 관련된 편견과 오해의 해소에 도전한다. 코코넛을 이야기하면서 열대지방 가난한 나라의 가난의 원인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의 축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이끄는 방식이다. 또 멸치 이야기에서 멸치를 먹는 새들의 배설물인 구아노 덕분에 호황을 누렸던 페루 경제가 인공 합성 비료의 출현으로 몰락한 사례처럼 원자재가 아닌 기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장 교수는 이 책에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생산성 차이에 있다고 강조한다. 기술에 대한 투자와 창의성 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이 역사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부를 쌓으면 복지를 강화한 주된 동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장 교수는 “기존의 책이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새 책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됐다. 2022년부터는 런던대 교수를 맡고 있다.

최수문 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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