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발 위기] 특별기고 |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SVB 파산에서 한국 은행주 투자 읽어내기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2023. 3. 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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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하나의 유령-미국 실리콘밸리뱅크(이하 SVB)발 금융위기라는 유령이, 한국 증시를 떠돌고 있다.’ 2008년 3월 16일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파산 이후, 도미노가 무너지듯 뒤따랐던 금융시스템 붕괴가 이번에도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2008년 부동산 시장 냉각으로 모기지 채권이 망가지면서 당시 금융기관들 파산으로 연결됐듯이, 2023년에 실리콘밸리 불황이 SVB를 시작으로 뱅크런과 신용위기로 발전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을 견디다 못한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경색이 현실화한 것이 SVB 파산이다.

SVB 파산, 경제 전반 아닌 실리콘밸리 한파

예기치 않은 SVB 파산이 증시에 부정적 뉴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SVB 파산은 경제 전반이 아닌 실리콘밸리에 불어온 한파라고 보는 것이 맞다. 성장주의 텃밭인 스타트업 불황의 직격탄을 SVB가 고스란히 받아낸 것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변동성을 키웠지만, SVB 충격을 너무 확대해석하지는 말자.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지금은 다르다. 미국 은행들이 지금 당장 유동화할 수 있는 자산은 총자산의 20%에 달한다. 금융위기 시점에는 4%에 불과했다. 은행으로 촉발된 신용경색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나아가 미국 대형 기관의 자산구조는 SVB와 다르다. 한국의 은행주는 더더욱 구조가 다르다. 가계부채 위기론이 나오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한국에서는 은행의 급격한 자산건전성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금융 당국의 강한 개입이 지속돼 왔다. 그 결과로 글로벌 금융 환경이 악화할 때,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부각돼온 사례가 많다. SVB 파산이 연쇄적인 금융시스템 붕괴의 시발점이 아니라면, 이후 추가 가격 조정구간에서 한국의 은행주는 어떨까. 신용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며, 주가 조정이 더 깊어질까. 아니면 지나친 우려로 인한 가격 조정이 은행주 투자 확대의 기회일까. 필자의 판단은 후자다.

국내 은행주 주주환원 확산

해외 은행주와 비교해 볼 때 국내 은행주는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주주환원율을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즉, 해외 은행주의 경우 성장성이 낮은 대신 회사의 수익을 배당 혹은 자사주 소각 형태로 상당 부분 주주에게 돌려주는데, 국내 은행주는 주주환원에 상대적으로 인색하다. 실제로 국내 대형 금융지주의 배당 성향, 즉 전체 순이익에서 배당금을 나눈 비율은 25~30% 수준이다. 반면 유럽 은행 중 상당수는 배당 성향이 50%를 상회하고 있다. 중국 은행권 역시 3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은행들의 표면적인 배당 성향은 30% 내외이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지속 실시하고 있어 전체적인 주주환원율은 60~70%에 달한다.

척박했던 한국 금융주 투자의 새 지평이 열렸다. 은행주는 아니지만 바로 2022년 금융주 가운데 독보적인 성과를 기록했던 메리츠금융지주 및 계열사(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가 문을 열었다. 회사는 지난해 공시를 통해 올해(2023년)부터 중기적으로 전체 연결 순이익의 50%를 주주에게 환원할 방침을 결정했다. 이 발표 다음 날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의 주가는 모두 상한가를 기록했다.

메리츠금융지주가 쏘아 올린 이른바 적극적 주주환원 조치의 ‘공’은 이내 금융주 전반으로 확산했다. 실제로 은행계열 금융지주는 2022년 경영실적을 발표하면서 향후의 자본정책 방향을 함께 제시했다. 국내외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줄곧 해외 은행들과 유사한 수준으로의 배당 성향 상향, 자사주 소각 등 추가적인 주주환원 조치의 요구를 받아왔던 데 더해, 연초 이후로는 행동주의 펀드의 ‘은행권 주주환원 확대’를 위한 캠페인이 실시되면서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대형 은행계 금융지주회사들은 중기 혹은 장기적인 자본정책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은행 자회사를 보유하지 않은 메리츠금융지주와 달리 은행계 금융지주회사는 상대적으로 엄격한 자본 규제를 적용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은행지주들의 경우 규제 수준 대비 과도하게 높은 자본 비율을 기록하고 있어 초과 자본에 대해 주주들에게 환원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흔히 알려진 은행 자기 자본 비율인 BIS비율의 일종인 보통주 자본 비율의 경우 감독기준은 10.5%지만, 신한지주, KB금융지주 등 대형 금융지주의 경우 평균 13%를 상회하고 있다. 따라서 12~13%를 상회하는 초과 자본에 대해서는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원칙을 발표했고 이러한 기대감을 선반영해 연초 이후 은행주 주가는 크게 상승했던 경험이 있다.

주주가치 시각에서 은행주 바라볼 때, 지금이 투자 기회

최근 은행주는 연초 주가로 회귀했다. 은행 마진 확대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정책 당국의 시선이 하락을 촉발한 첫째 동인이었다. 여기에 미국의 SVB 파산이 불피운 신용경색 우려가 은행주 추가 하락을 재차 가속시켰다. 물론 은행주를 둘러싼 주변 환경도 악화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와 기업 활동 둔화로 대출 증가율도 급감했고, 이로 인한 은행의 마진 악화는 진행형이다.

당장 은행주가 상승으로 돌아설 모멘텀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은행주의 가치 투자로서의 매력이 부상하는 시기는 지금과 같았다. 신뢰가 흔들릴 때 주가는 가치보다 깊게 추락하지만, 결국 주가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모멘텀이 아닌 가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금융위기로 치닫는 상황이 아니라면, 현재 은행주의 밸류에이션 매력은 매우 높다. 여기에 메리츠금융지주가 시작한 변화가 힘을 보탤 것이다. 이익이 안정적으로 증가하거나 자본 규모가 확대될 경우 경영 성과의 일정 부분을 주주와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이 적어도 금융업종 내에서는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주주가치 시각에서 은행주를 바라볼 때가 됐다. SVB 파산으로 인한 은행주 조정이 이어지는 구간에서 한국 은행주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다.

Plus Point
추경호·한은
“SVB 사태 국내 영향 가능성 작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14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내 경제·금융 당국은 SVB 사태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1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국내 금융기관은 자산·부채 구조가 SVB와 다르고 유동성이 양호해 일시적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충분한 기초체력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도 전날 열린 시장 상황 점검 회의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의 건전성이 개선돼 왔고, 미 재무부·연준·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자 전면 보호조치를 즉각적으로 시행했다”며 SVB 사태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져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했다.

다만 당국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세계 경제가 아직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시스템 불안 요인까지 겹치면 향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현시점에서 SVB 사태의 여파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높은 경각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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