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 글로벌 경제 리뷰] 미국 주택경기 하강, 서브프라임 위기 재발 전조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초기에만 해도 주택 부문은 미국 경제에서 가장 선전했다. 지난 2020년 3~4월 봉쇄 조치 등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자, 신규주택 착공 건수가 일시적으로 급감했으나 이내 반등해 2022년 4월 정점을 찍을 때까지 무려 92.4% 급증했다. 기존주택 판매도 빠르게 늘었고 수요가 급증하자 주택 가격도 상승했다. 하지만 지난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정책으로 시중금리가 치솟으면서 모기지 금리가 두 배 올랐다. 이로 인해 주택수요가 치명타를 입었다. 2022년 4월 이후 신규주택 착공 건수는 23.4% 감소했고, 주택 가격도 계속 하락 중이다.
그렇다면 2006~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와 같은 위기가 재발할 것인가.
2022년 美 주택경기 호황 막은 장애물
팬데믹 초기 단연 다른 산업을 능가하는 호황을 보였던 주택 부문이 지난해 두 가지 높은 장애물에 직면했다. 첫째, 모기지 금리가 치솟았다(그림 1). 올해 1월 말 기준 30년물 모기지 고정금리는 6.4%로, 2022년 초에 비해 3%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높은 물가에 금리 인상까지 겹치자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크게 약화됐다. 2020년 12월 이후 명목임금이 8.8% 올랐음에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4.5% 하락했다.
둘째, 지난해 주택 가격이 뛰면서 주택수요가 침체됐다. 팬데믹 발생에도 주식 등 여타 자산군과 달리 주택 가격은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전미 평균 주택 가격은 2019년 12월부터 2022년 6월 정점을 찍을 때까지 43.1%나 상승했다. 전미부동산업자협회(NAR)가 발표한 기존주택 판매 가격(중간값)도 같은 기간 50.7% 급등했다.
높은 주택 가격 부담을 안고 있던 미국 소비자들은 2022년 금리마저 오르자 주택구입 능력이 더 약해졌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 소득 대비 대출 원금 및 이자 상환 비율이 26.2%로, 1년 전보다 약 9%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주택 부문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2022년 4분기 기업투자가 전년 대비 3.7% 증가하는 동안 실질 주택투자는 19.2% 감소했다. 신규주택 착공 건수는 2022년 4월 정점을 찍은 후 같은 해 12월까지 40만 건 이상 감소해 월 140만 건을 밑돌았다. 건축허가 건수도 2021년 12월 정점을 찍은 후 29.5% 줄었고, 기존주택 판매도 지난해 1월 650만 건으로 고점을 찍은 후 38.1% 감소했다.
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례적
현재 미국 주택경기 하강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재발이 아니냐,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또 촉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이 2006년에 시작된 주택시장 거품이었던 것은 맞지만, 애초에 거품을 만든 것은 왜곡된 모기지대출 관행이다.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기지 상품과 이처럼 부실한 상품의 위험에 대해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이해가 부족했던 것도 위기를 조장했다.
당시 금융위기가 발발할 때까지,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점수 620점 미만의 불량 채무자 대상)와 로프라임 모기지(신용점수 620~659점 비우량 채무자 대상) 신규대출 건수가 매우 높았다. 이 중 대부분은 재직 여부, 소득, 순자산 심사가 필요 없거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적격대출 요건보다 높은 ‘알트에이(Alt-A)’ 대출을 받았다. 이들 대출은 일반 대출보다 부실채권이 될 위험이 당연히 높았다. 신용상태가 불안정한 채무자들에게 무분별하게 모기지가 발행된 데다 주택투기까지 성행한 결과, 2006~2009년 주택 압류 건수가 급증했다. 그리고 큰 인기를 얻었던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이 대량 부실화되자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수 개 분기 동안 저신용 또는 불량 채무자에 대한 모기지 대출과 압류 건수가 크게 늘지 않았다(그림 2). 올해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진다면 압류 건수가 늘어날 수 있지만, 과거처럼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대출, 자기자본비율, 자산담보 증권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크게 강화된 덕분이다. 게다가 미국 경제에서 주택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에 비해 줄었고, 주택경기 하강 속도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만큼 가파르지 않다.
부동산 경기 하강 장기화 가능성 작지만 인구 변화 복병
주택 부문은 특히 금리에 민감하다. 지난해 모기지 금리가 두 배 이상 뛰어 소비자의 주택구입 능력이 크게 약화한 만큼, 단기적으로 주택시장은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연준의 안정목표치인 2%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따라서 기대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잡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연준이 조만간 정책을 선회할 가능성은 없다. 주택 가격이 하락세에 진입하기는 했으나, 높은 자본 조달 비용을 상쇄할 만큼 크게 하락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 주택경기 하강은 2006~2009년처럼 구조적 결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경기순환주기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딜로이트가 수립한 기본 시나리오에 따르면, 실질 주택투자는 올해 8.8% 줄어들며, 지난해에 이어 감소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내년에는 경제가 안정화되고, 인플레이션이 완화돼 연준이 점차 긴축에서 선회하며 주택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주택 착공 건수도 올해 감소했다가 내년에는 반등할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주택투자와 신규주택 착공 건수가 기본 전망보다 큰 폭 감소할 수 있다. 이 경우 주택시장은 2024년 하반기에 가서야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주택시장을 관전할 때는 인구 변화라는 장기적 역풍이 불어오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선진국의 주택시장 성장 요인이었던 인구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미국 통계국은 인구 증가율이 2030년대 말 평균 0.5%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그림 3). 현재 미국 총인구 대비 주택 소유자 비율은 66%로, 2004년 1분기에 기록한 고점인 69.2%보다는 낮지만, 1990년대 초반 수준보다는 높다. 향후 10년간 인구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전후 시대처럼 주택시장이 인구 증가에 기대어 성장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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