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상온 초전도체 진위 논란] 에너지 혁명 가져올 꿈의 기술, 이번은 진짜일까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2023. 3. 27. 18: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 로체스터대의 랑가 다이어스 교수는 다이아몬드 모루 사이에 수산화물을 넣고 압착해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사진 로체스터대

전류가 흐를 때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超傳導) 현상을 일상 온도에서 구현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거리 상관없이 무손실 송전(送電)이 가능해 에너지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고성능 전자석도 만들어 자기부상열차와 핵융합 발전에 활용할 수 있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미국 로체스터대의 랑가 다이어스 교수 연구진은 3월 9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섭씨 21도에서 대기압 1만 배 정도 압력으로 상온(常溫)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초전도 물질을 개발했지만 대부분 영하의 온도나 대기압 수백만 배인 초고압에서 가능했다.

하지만 과학계는 환호보다 냉담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어스 교수가 2020년에도 ‘네이처’에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실험 자료를 임의로 수정한 의혹이 있다고 지난해 ‘네이처’가 논문을 철회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로체스터대 연구진은 “이번에는 다섯 차례 검토를 거쳤다”고 밝혔지만, 다른 연구진에게 초전도체 시료를 검증용으로 제공하지도 않아 의혹만 증폭시켰다.

상온 초전도체인 루테튬 산화물. 크기가 1㎜ 정도다. 압력을 가하면 파란 색에서 붉은 색으로 바뀐다고 ‘붉은 물체(red matter)’란 별명을 얻었다. 사진 로체스터대

초전도 현상 구현한 ‘붉은 물체’

초전도 현상은 전류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흐르는 것이다. 1911년 영하 270도에서 처음으로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래 과학자들은 더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찾기 위해 경쟁했다.

다이어스 교수 연구진은 희토류 원소인 루테튬에 수소와 질소를 넣고 대기압의 2만 배 압력으로 압착하고 3일간 섭씨 200도로 구웠다. 연구진은 새로 만든 초전도체가 압력을 가했을 때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고 ‘붉은 물체(red matter)’라고 이름 붙였다.

붉은 물체는 대기압 1만 배와 섭씨 21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가장 잘 보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다이어스 교수는 “이전 실험에서 상온 초전도체가 대기압의 수백만 배에서 작동한 것을 이번 결과와 비교하면 말을 탄 사람 옆으로 페라리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차이”라고 말했다.

논문의 공저자인 미국 네바다대의 아슈칸 살라마트 교수는 “이번 논문은 수산화물에 대한 가장 상세한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카네기 과학연구소의 알렉산더 곤차로프 박사는 ‘사이언스’에 “믿을 만한 연구 결과”라며 “맞는다면 이 논문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한 역작”이라고 말했다.

영하의 초전도체 위에서 자석이 떠 있는 모습. 상온 초전도가 구현되면 자기부상열차를 쉽게 만들 수 있다. 사진 로체스터대

학계에선 판단 유보하는 의견 많아

하지만 과학계는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대의 제임스 햄린 교수는 3월 9일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상온 초전도체는 초고효율 전력망과 컴퓨터 칩뿐 아니라 자기부상열차와 핵융합에 필요한 초강력 전자석도 만들 수 있다”며 “맞는다면 정말 혁명적인 결과지만 아직은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과학자들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은 무엇보다 지난해 ‘네이처’가 논문을 철회한 이력이 우선 영향을 미쳤다. 다이어스 교수는 2020년 ‘네이처’에 섭씨 15도에서 수소와 탄소, 황을 다이아몬드 모루 사이에 넣고 대기압의 260만 배로 압착해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성과는 그해 ‘사이언스’의 10대 과학 성과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네이처’는 “다이어스 교수 연구진이 논문의 표 두 개에 나온 실험 데이터에서 비정상 신호를 빼면서 표준적이지 않고 자신들이 임의로 규정한 절차를 사용했다”며 논문 게재를 철회했다. 결론에 맞추기 위해 실험 데이터를 손봤다는 의미였다.

초전도는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과 함께 외부 자기장과 반대 방향으로 같은 세기의 자기장이 생기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과학자들은 다이어스 교수 연구진이 전기저항에 대한 데이터는 밝혔지만, 자기장 관련 자료는 누락시켰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이어스 교수는 당시 ‘네이처’의 논문 철회 결정에 반발하며 곧 원래 데이터를 그대로 넣은 논문을 새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에는 외부 자기장과 상호작용도 검토해 초전도 현상이 구현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번 발표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탈리아 사피엔자대의 릴리아 보에리 교수는 ‘사이언스’에 로체스터대의 실험 결과는 기존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존 초전도 이론은 결정 구조의 진동이 전자 사이의 접착제 역할을 해서 저항 없이 전류가 흐른다고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수산화물에서도 상온 초전도 현상이 가능하나 영하 148도의 극저온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접착제 역할을 하던 진동이 약해져 초고압에서나 격자 구조와 전자쌍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이어스 교수는 이번에는 크기가 아주 작은 질소 원자가 커다란 루테튬 원자 사이를 지나가면서 격자 구조를 단단하게 하는 상자 모양을 이룬다고 반박했다.

미 로체스터대의 랑가 다이어스 교수가 초전도체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네이처’에 다른 연구팀보다 훨씬 낮은 압력에서 작동하는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사진 로체스터대

무손실 전력 전송 실현할 꿈의 기술

상온 초전도에 이목이 쏠린 것은 초전도 현상이 일상 온도에서 실현되면 에너지 산업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가정에 오기까지 4% 이상이 사라진다. 구리 전선의 전기저항으로 전기가 열로 바뀐다. 미국에서만 한 해 22조원이 송전 과정의 전력 손실로 사라진다.

초전도 현상이 상온에서 구현되면 바다 건너까지 무손실 전력 전송이 실현된다. 그러면 자연 조건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청정에너지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햇빛이 강한 지역에서 태양광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전선만 연결하면 어디든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 의료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자석을 초전도체 위에 두면 공중 부양한다. 지금은 액체질소로 극저온 상태를 만들어야 가능하지만, 상온 초전도체가 나오면 모든 열차를 자기부상열차로 만들 수 있다. 극저온 초전도체를 쓰는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나 핵융합 발전도 획기적으로 저렴해질 수 있다.

이번 논란은 다른 연구진이 실험으로 논문 결과를 재현하면 해결될 수 있다. 그렇지만 로체스터대 연구진은 지식재산권을 들어 시료 제공을 거부했다. 다른 과학자들은 “비과학적인 행동”이라며 “로체스터대 연구진이 시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재현 실험을 하지 말라고 하겠다”고 비판했다. 결론이 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