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와인 <39>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소비뇽에 진심인가요?” 다양한 개성과 치즈 페어링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2023. 3. 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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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나코타 와인을 만든 와인 메이커 피에르 세이양. 사진 아나코타 와이너리 2 스테이크와 아나코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사진 김상미

최근 상당히 흥미로운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테이스팅이 있었다. 프랑스 출신 마스터 소믈리에 피에르 마리 파튜(Pierre-Marie Pattieu)의 진행으로 보르도산, 토스카나산, 캘리포니아산을 비교 시음하는 자리였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레드 와인용 포도 가운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품종이다. 이렇게 높은 인기를 누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 매력이 과연 무엇인지, 새롭게 떠오르는 산지는 어디인지, 무엇을 곁들이면 더 맛있는지 카베르네 소비뇽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산지별 다양한 매력의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소비뇽은 17세기에 느닷없이 등장했다. 프랑스 남서부의 한 포도밭에서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과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우연히 교배되면서 탄생했다. 그래서 이름도 부모에서 한 단어씩 따와 카베르네 소비뇽이 됐다. 고대부터 인간이 재배해온 포도가 수없이 많은데 막내 중의 막내인 카베르네 소비뇽이 어떻게 레드 와인의 제왕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

김상미와인 칼럼니스트

카베르네 소비뇽은 장점이 많다. 우선 어디서나 잘 자란다. 춥지만 않으면 모든 기후에서 재배가 가능하고 질병에도 강하다. 와인 숍에 가보면 국가별로 생산된 카베르네 소비뇽이 즐비한 까닭도 바로 그래서다. 하지만 튼튼하다는 이유만으로 너도나도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 품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맛이 좋고 자란 환경에 따라 다른 맛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겨운 줄 모르고 카베르네 소비뇽을 장복(?)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산지별로 특징을 간추리자면 프랑스 보르도산은 풍미가 우아하고 질감이 탄탄하며, 칠레산은 과일 향이 달콤하고 피망 같은 매콤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산은 풍부한 아로마와 경쾌한 신맛의 조화가 매력적이고, 미국 캘리포니아산은 진한 과일 향과 묵직한 보디감이 특징이다.

마스터 소믈리에 파튜와 함께 시음한 와인에서도 지역별 개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샤토 린치 바쥐(Chateau Lynch-Bages)는 보르도산 고급 와인답게 베리류의 향미가 신선하고 후추와 연필심 같은 아로마가 복합미를 장식했으며 파우더 같은 타닌이 강건한 구조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사시카이아(Sassicaia)는 토스카나의 강렬한 태양을 품은 듯 달콤한 과일 향이 풍부했고 여운에서도 과즙의 감미로움이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이 둘과 비교 대상으로 나온 캘리포니아산이 뜻밖이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산지인 나파 밸리가 아니라 나이츠 밸리(Knights Valley)에서 생산된 카베르네 소비뇽이었기 때문이다.

방한한 마스터 소믈리에 피에르 마리 파튜가 아나코타 와인을 들고 있다. 사진 김상미

주목할 만한 새로운 산지, 나이츠 밸리

나이츠 밸리는 태평양에 인접한 소노마와 내륙에 있는 나파 밸리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고도가 높은 산등성이에 위치해 나파 밸리보다 기온은 서늘하지만, 햇볕은 강렬한 곳이다. 1990년대 이후에 와인 산지로 개발됐고 면적이 10㎢에 불과한 작은 지역이지만 다양한 테루아(terroir·토양과 기후 등 포도 생산 환경)를 갖춘 것이 큰 장점이다. 2001년에 설립된 아나코타(Anakota)는 나이츠 밸리에서 오로지 카베르네 소비뇽만 재배하는 와이너리다. 이들은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단일 포도밭)급으로 두 가지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테루아에 따라 확연히 다른 맛이 압권이다. 해발 230m 화산 토양에서 생산된 헬레나 다코타(Helena Dakota)는 과일 향이 풍부해 풍미가 화려한 반면, 290m 고도의 자갈이 많은 밭에서 생산된 헬레나 몬태나(Helena Montana)는 아로마가 신선하고 스타일이 경쾌하다. 두 와인 모두 린치 바쥐와 사시카이아에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구대륙의 우아함과 신대륙의 풍부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츠 밸리의 자연환경만으로 이런 와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알고 보니 아나코타를 탄생시킨 사람은 프랑스인 와인 메이커 피에르 세이양(Pierre Seillan)이었다. 50년이 넘는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명품 와인 베리테(Vérité)를 만든 명장이다. 넓은 의미의 테루아에는 토양과 기후뿐만 아니라 사람도 포함된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철학과 손길이 와인 맛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신대륙의 자연과 구대륙 출신 인간이 빚어낸 아름다움. 그것이 아나코타가 품은 매력이었다. 시음회가 끝난 뒤 파튜 소믈리에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며 아나코타 2011년산도 맛을 보았다. 12년간 숙성된 와인에서는 한층 달금해진 과일 향이 느껴졌고 다채로운 향신료 향이 실크처럼 매끈한 질감과 어우러져 입맛을 사로잡았다. 신대륙 와인은 숙성 잠재력 면에서 구대륙 와인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의견도 많지만, 아나코타와 나이츠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에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파튜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에게 카베르네 소비뇽과 어울리는 음식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예상대로 그는 스테이크를 최고로 꼽았지만 의외로 치즈와 즐길 때는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우리가 가장 즐겨 먹는 브리나 카망베르 또는 파르메산처럼 딱딱한 치즈는 카베르네 소비뇽의 쓰고 거친 맛을 부각하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크림처럼 부드러운 지방이 카베르네 소비뇽의 강한 타닌을 포근히 감싸는 블루 도베르뉴(Bleu d’Auvergne)와 미몰레트(Mimolette)를 추천했다. 모두 전문 매장이나 인터넷에서 구입이 가능한 치즈들이다. 이번 주말에는 맛있는 치즈와 함께 카베르네 소비뇽의 진한 풍미를 제대로 즐겨 보면 어떨까? 늘 마시던 와인도 좋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산지별로 보여주는 다채로운 맛이야말로 카베르네 소비뇽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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