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채 인기매물 씨말라 … 슈퍼리치, 1분기만 8500억 폭풍매입
"19-6, 20-2 매수해 주세요."
금융자산을 10억원 이상 굴리는 고액 자산가(슈퍼리치)들은 지난해 10월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마비로 시중금리가 폭등해 채권가격이 폭락했을 때부터 장기채에 서서히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2019년 9월 발행한 한국 국채 20년물(19-6)과 2020년 3월 발행한 국채 30년물(20-2)을 찾는 고액 자산가가 많았다. 큰손들 사이에선 '19-6'과 '20-2'가 고유한 상품 용어처럼 통용됐다고 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장기채 투자가 유망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지난해 말부터 특정 채권 상품을 찾는 슈퍼리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며 "채권은 발행 후 거래가 되면서 유통 물량이 있어야 하는데 매물이 바닥 나 사지 못했던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27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고액 자산가들의 장기채 매수액은 2022년 상반기에 280억원, 2022년 하반기에 3600억원, 올해 1~3월에는 8500억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채권 개미도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3월 개인투자자들은 채권을 7조9688억원 순매수했다. 지난해 순매수액도 20조4939억원에 달한다. 김완준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최근 채권 유통물 시장에서 고액 자산가들의 장기채 수요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이미 지난해 3분기 말부터 장기채 분산, 분할 투자를 지속하고 있고 평가 이익 구간에 진입한 고객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장기채 투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자본(매매) 차익을 노리기 위한 저금리 장기채를 매수하는 경우와 만기까지 보유하며 이자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고금리 장기채를 사들이는 경우가 있다. 두 종류의 장기채를 적절히 분할 매수하면서 채권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는 큰손이 많다는 분석이다. 최근처럼 시중금리 상단이 제한되고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커지는 시기엔 저금리 장기채 매수 전략의 기대수익률이 큰 편이다.
특히 세금 부담이 큰 고액 자산가들은 채권의 매매 차익을 노리는 편이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이 유예되면서 채권의 매매 차익 비과세 적용이 연장됐기 때문이다.
작년 10월부터 장기채를 사들인 고객은 최소 10% 이상 매매 차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꾸준히 매수한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20%를 넘었다. 고액 자산가들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 그중에서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 사례도 많다. 이자나 배당수익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이익이 세금으로 나간다. 세금을 뗀 순수한 수익을 놓고 보면 두 배에 가까운 이자 수익을 거둔 거나 마찬가지다.
최근 달러 자산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들의 경우 미국 국채와 외화표시채권(KP물)에 투자하기도 한다.
미국의 20년물 이상 장기채의 경우에도 현재 가격이 2014년 수준으로 급락한 상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향후 기준금리를 내릴 경우 채권가격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향후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환차익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미래에셋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고객이 지난해보다 4배 이상 늘었다. 특히 고액 자산가들이 많은 서울 강남의 60대 큰손들이 미국 장기 국채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전력 채권(한전채)을 사들인 투자자들의 수익률도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표면금리 5.99%에 발행한 한전채의 현재 유통 금리는 3.6% 수준이다. 채권가격은 당시보다 5.9% 올랐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지난해 말 한전채 금리가 높게 발행돼 대거 사들였는데 최근 큰 평가 수익이 났다"며 "당분간 매도하지 않고 계속 가져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장기채 투자 열풍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향후 동결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금리 상단을 제한해 향후 채권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채권가격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황지연 교보증권 연구원은 "은행권 리스크로 인해 최종 금리의 불확실성이 축소되면서 금리 상단이 제한되는 효과가 발생했다"며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 확대 및 장기 금리의 하락폭이 단기 금리 대비 낮은 점을 고려해 장기채 투자 매력이 커졌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에도 기준금리 인상이 한 차례 정도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채권시장에서의 외국인투자자 이탈 가능성도 작다"고 밝혔다. 실제 외국인투자자들은 올해 2~3월 원화표시채권을 3조6000억원 이상 사들였다.
[차창희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마트서 돼지호박 샀다면 당장 반품하세요”…정부 당부 왜? - 매일경제
- “이 월급 받으면서 날 만나러 오다니”…소개팅女 분노케한 남성 월수입 - 매일경제
- “받아 줄 병원 없어서”...10대 여학생 구급차서 2시간 넘게 있다 숨져 - 매일경제
- 교통카메라 지나도 끝난게 아니네…“뒷번호판 촬영합니다” - 매일경제
- "1회 충전에 500㎞"… 기아 대형SUV 'EV9' - 매일경제
- "친구가 권하면 나도 …" 10명중 6명은 깜깜이 투자 - 매일경제
- [속보] 尹대통령, 새 안보실장에 조태용 주미대사 내정 - 매일경제
- "2금융 대출 갈아타러 갔다가 '입구컷' 당했어요" - 매일경제
- 민주당 의원 다 덤벼도 한동훈에게 안되는 이유 [핫이슈] - 매일경제
- KBO, 성범죄 혐의 서준원 참가활동 정지…무죄 나와도 복귀 어렵다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