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무력화' 네타냐후, 반기 든 장관 경질
국방장관 "군부 혼란 초래"
반대연설 하루만에 전격해임
뿔난 시민들 고속도로 점거
경찰, 물대포 쏴 강경 진압
美 "타협점 찾아라" 경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대법원 권한을 축소하는 우파 연정의 사법 개혁안에 반대 목소리를 낸 이스라엘 국방장관을 전격 해임했다. 야권을 비롯해 공직사회와 시민사회의 큰 반발을 샀던 사법 개혁안을 예정대로 입법화하겠다는 강수를 둔 것이다. 국방장관 경질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법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에 불붙은 가운데 핵심 우방국인 미국마저 네타냐후 총리의 막무가내 행보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네타냐후 총리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을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날 갈란트 장관은 TV 연설을 통해 "정부의 사법 개혁안이 군부에 혼란을 초래해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입법 일정을 연기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의 사법 개혁안에 반발한 예비군이 집단 복무 거부 움직임을 보였고, 이를 수습하고자 장관이 직접 나섰지만 총리실은 '해임'으로 맞받은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갈란트 장관은 예비군들의 복무 거부를 설득하는 데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이스라엘 우파 연정은 지난 1월부터 대법원의 권한과 기능을 줄이는 '사법 개혁' 입법을 추진해왔다. 대법원이 이스라엘 헌법인 '기본법'을 위반하는 입법을 위헌 심사할 수 없도록 하고,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법관인사위원회에 여당의 입김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후 사법 개혁안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야권과 시민의 목소리가 거세졌고, 공군 예비역을 중심으로 소집과 훈련 거부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연정은 지난 19일 법관인사위원회 위원 구성에서 야권과 사법부 측 인사를 더 늘리는 사법 개혁안 수정안을 내놓으며 한 발 물러섰으나, 각계각층의 반발이 계속 이어졌다. 여기에 최근 연정이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를 지키기 위해 총리 직무 부적합 결정을 제한하는 내용의 정부조직기본법 개정안도 강행 처리하면서 여론이 더 악화된 상황이었다.
갈란트 장관 해임으로 사법 개혁안을 둘러싼 정부와 시민사회 간 갈등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날 수도 텔아비브, 예루살렘 등 이스라엘 전역에서 수천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심야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아얄론 고속도로 등 최소 2개 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시위대가 네타냐후 총리 사저 주변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진압을 위해 경찰이 물대포까지 발사했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이스라엘 주요 대학은 학교 폐쇄로 저항했고, 이스라엘 최대 노조인 히스타드루트는 27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야권과 공직사회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이날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네타냐후 총리가 갈란트 장관을 해임할 수는 있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연정의 광기에 저항하는 국민까지 해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라피드 전 총리와 베니 간츠 전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국가안보는 정치 게임에 사용할 카드가 될 수 없다"며 "네타냐후 총리는 오늘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법 개혁안이 이스라엘 정국을 혼돈으로 몰아가자 핵심 우방인 미국마저 네타냐후 총리에게 "타협점을 찾으라"며 경고했다. 이날 백악관은 이스라엘 사태에 대한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타협점을 찾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 개혁안 입법 일정을 보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7일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는 여당인 리쿠드당의 소식통을 인용해 정부가 사법 개혁 입법 절차 중단을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갈란트 장관의 해임 이후 심야 시위가 확산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밤새 입법 중단 방안을 놓고 논의를 거듭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7일 오전 논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여권 일부의 반발로 잠시 보류된 상황이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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