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천금매골의 지혜

2023. 3. 27. 17: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경쟁력의 근원인 연구소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인재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뛰어난 인재들이 대학과 기업으로 떠나는 현상을 목격 중이다. 우리 연구소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이 해마다 발표하는 두뇌유출지수에서 한국은 수년째 중하위권 신세다. 연구소를 포함해 과학기술계 일자리의 매력을 높이는 근본적 해결책 없이는 후배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돌릴 길이 없다. 인재 한 명 한 명에게 최고의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능력에 걸맞게 예우하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중반 필자가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연구팀이 그랬다. 세계적 석학이 팀의 리더였고, 톱니바퀴처럼 협업하는 문화가 있었고, 연구 자원이 풍족했다. 세계 각지의 인재들이 스스로 모여들었다. 선진 기술의 모방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바다를 찾던 필자에게도 그곳은 좋은 연구를 위한 여건과 성장의 기회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하면 연구 현장이 인재들의 첫 번째 선택이 될 수 있을까? 먼저 마음껏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 세계적 대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팀이 있다면 인재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연구는 더 이상 혼자 하는 고독한 레이스가 아니다. 탄소중립, 감염병 등 과학기술로 풀어야 하는 문제들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팀을 이루고 융합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시대다. 아이언맨의 아크리액터로 더 친숙한 인공태양을 만들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7개국 과학자들이 모여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구축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동시에 젊은 연구자들이 마음껏 꿈을 펼치고 성장할 수 있는 경력 개발 경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성공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연구가 중단되지 않도록 박사후연구원부터 시니어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핵심 연구가 경력 초기의 도전적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술이 무르익었다면 시장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거나,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생태계도 마련되어야 한다. 요컨대 기술로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성공 스토리가 많이 나와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자들의 처우 개선과 사기 진작에 나서야 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에 뛰어든 인재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탁월한 연구 업적에 대한 획기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또한 아직도 연구력이 왕성한 선배 연구자들이 정년을 맞아 실험실을 떠나는 사례를 보면서 국가적 손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정년 없이 일할 수 있기에 전문직을 선호한다는 젊은 세대들의 말을 흘려들어선 안 되겠다.

죽은 말의 머리를 오백 냥 금으로 샀다는 연나라 왕의 이야기에서 천금매골(千金買骨)이라는 말이 나왔다. 천리마로 비유되는 좋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인재 한 명이 2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회장의 말도 있는데, 우리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윤석진 KIST 원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