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몽골 권투 선수의 안타까운 부상…"링닥터가 없는 게 말이 되나?"
격투기 경기에서 선수가 불의의 부상을 당하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주먹이나 발기술에 얼굴에 상처를 입고 출혈이 발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 곁에 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링닥터'입니다.
링닥터는 경기 전날 있는 메디컬 체크에서 선수의 상태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 경기 직후 경미한 부상을 치료하는 것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심지어 선수 상태에 따라 경기를 중단시키는 '닥터 스톱' 권한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링닥터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초동 조치가 미흡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합 전 메디컬 체크 허술…"직원이 혈압 체크"
이번 권투경기는 한국권투위원회(KBC) 주관 아래 한 업체가 주최했습니다. 주최 측은 국내 권투계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은 KBC가 주관하는 걸 믿었습니다. 당연히 의료진도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합 전날 있는 메디컬 체크에서부터 링닥터는 없었습니다. 통상 체중과 혈압 측정 외에 동공이나 신체 상태 등을 확인하는데 이 조차 없었던 겁니다.
권투계 관계자는 자동 혈압계 외에 선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가 부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KBC 측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KBC 사무총장은 직원이 혈압 체크를 진행했고, 이를 자신이 도와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선수가 일본에 가서도 동공 검사 안 해요. 왜냐면 그쪽에서 온전한 선수를 보내줬을 거라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서로 교류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08.01.03 00:22, 불면증‧몸살 앓아도 메디컬 테스트는 'OK', 조선일보, 민학수 기자>
"일본 격투기에서는 선수가 링에 오르기 전 4명의 전문의(정형외과의, 신경외과의, 내과의, 응급처치의)가 건강 상태를 이틀에 걸쳐 체크하도록 돼 있다. 경기 전날은 CT검사와 혈액 검사, 경기 당일은 흉부와 심장 검사, 맥박체크, 소변 검사를 한다."
시합 당일도 "링닥터 없었다"
경기 당일, 몽골 선수 A 씨는 상대 선수에게 클린 히트를 당하며 끝내 경기에서 패배했습니다. 당시 경기를 현장에서 중계한 캐스터도 '관자놀이를 정확히 가격 당했다'고 전했을 정돕니다. 하지만, 그 이후 다리가 풀린 A 씨의 상태를 누가 살폈을까요? 코치진이 연방 A 씨에게 물을 뿌리고 상태를 살필 뿐이었습니다. 적어도 경기 당일에라도 링닥터가 있어야 했는데, 이조차도 없었던 겁니다. A 씨는 코치진의 부축을 받아 겨우 링을 빠져나왔습니다.
이후 정신을 잃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현장에선 119에 신고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당시 출동했던 소방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당시 A 씨가 동공반사도 없었고, 입가엔 토사물이 묻어 있는 상태였다고 전했습니다. 또, 현장엔 응급구조사만 있었을 뿐 의사는 없던 걸로 기억한다고 전했습니다. 또, 분명 현장에 사설 구급차가 있었지만 왜 이를 이용해 A 씨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링닥터' 없어도 된다?…권투계 "이해할 수 없다"
<한국권투위원회 경기규칙, 제50조 제3항 제3호>
"링닥터는 경기 중 링 사이드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임석하고 주심의 요청이 있을 경우 부상당한 선수를 진단, 그 결과를 주심에게 알려야 하며 만일 긴급 사태가 야기될 경우에는 즉시 응급조치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권투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링닥터 경험이 많은 의사는 취재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합에 링닥터가 없었는 게 맞는지 되물었습니다. 이세춘 전 KBC 사무총장은 "링닥터가 없었을 땐 내가 시합을 중단시키기도 했다"며 현 KBC 집행부의 해명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피해자"…가족 "원래 건강했다"
'링닥터가 없어도 된다'는 해명 뒤에 따라온 주장은 더욱 황당했습니다. A 선수가 원래부터 몸이 불편했던 사실을 숨겼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피해자"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던 건 뭘까요? 바로 A 선수의 진단서 속에 있는 '만성경막하출혈'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A 선수는 병원서 급히 뇌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만성 출혈과 급성 출혈이 혼재됐다'는 취지로 진단서에 적시했습니다. 이를 명분으로 KBC 측은 A 선수가 오히려 몸이 불편했고, 이를 숨겨서 피해를 끼쳤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말로 A 선수가 이를 숨기고 경기에 참가했던 걸까요?
어렵사리 한국을 찾은 A 선수의 가족과 라크바 심 코치는 정반대의 얘기를 내놨습니다. A 선수가 10년 넘게 권투계에 몸담았고, 그동안 여러 차례 검진을 받았지만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는 겁니다. 가족과 코치는 취재진에게 A 선수의 과거 의료 진단 카드를 내밀었는데, 그 속엔 특별히 이상이 있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여기에 의사도 가족과 코치 앞에서 이번 사안과 이전에 몸에 남아있던 흔적은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게 동석한 통역관의 설명입니다. 그마저도 A 선수가 오랫동안 운동을 했기 때문에 버티는 수준입니다. 권투계 관계자는 "설령 A 선수가 깨어나도 다시 권투를 할 순 없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인터뷰 하지 말라"…외교적 문제 비화되나?
첫 보도가 나간 23일(목) 당일, 라크바 심 코치와 A 선수의 가족은 어렵사리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입국 당시부터 KBC의 '견제'가 시작됐습니다. 코치를 향해선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고 하거나, '너희들이 잘못했으니 돈은 너희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는 등 계속해서 압박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입국 당일 영사관서 인터뷰가 예정된 취재진을 따라오기까지 했습니다.
또 KBC는 코치와 가족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 필요한 비자 비용, 편도 비행기 표만 제공했습니다.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 다시금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라크바 심 코치와 친한 한국 권투계 관계자가 이들의 귀국 비행기 표를 대신 구매해 줬습니다. 25일(토) 오후, 이들은 병상에 누운 A 선수를 뒤로한 채 몽골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문제는 라크바 심 코치가 몽골에서 '국가 영웅'급의 대접을 받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라크바 심 코치는 선수 시절 몽골 건국 이래 최초로 세계챔피언 석권이라는 역대급 기록을 이룩한 인물입니다. 오죽하면 당시 임시 국경일까지 만들어졌을 정돌까요. 지금도 몽골 정부의 장관급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상탭니다.
자사 보도까지 났지만, KBC 측은 태도를 바꾸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라크바 코치는 몽골 현지서 문제 제기를 할 모양샙니다. 현지에선 'A 선수가 경기 중 부상으로 쓰러졌다' 정도의 보도만 난 상탭니다. 이를 예상한 듯 몽골 사회노동복지부 한국주재사무소 관계자도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습니다. 즉, 상응하는 처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취재진인 저도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국익에 해가 될 수도 있는 보도인지. 하지만, 권투 경기서 링닥터가 없었던 건 잘못된 겁니다. 이를 빨리 인정하고 합당한 사죄를 해야 한국 권투계에 더 큰 '구멍'이 생기지 않습니다. 지금 구멍의 크기는 '호미'로 막긴 힘들어 보이는데, 그나마 '가래'로 막을 수 있는 사이즈네요. 더 커지면, 저도 모르겠습니다.
손기준 기자standard@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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