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섬뜩한 '문 앞 X표' 사건…스토킹 피해자들에 필요한 '진짜 위안'
집 앞에 새겨진 수상한 X자 표시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126722&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
지난 12일 아침, 당직 근무를 마치고 온 20대 여성 A 씨는 천장에서 이상한 표시를 발견했습니다. 천장에 검은색 마카로 휘갈겨 쓴 X표시 4개와 그 위에 보조배터리처럼 생긴 검은색 소형 물체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10세대가 넘게 사는 복도식 아파트에 A 씨 집 앞에만 설치된 게 수상하긴 했지만, 밤샘 근무로 인한 피곤함에 일단 집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6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누군가 현관 키패드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세요?' A 씨의 외침에도 응답은 없고 키패드만 계속 누를 뿐이었습니다. 두려움을 느낀 A 씨는 인기척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문을 열었습니다. 사람은 온 데 간데 없었고 아침까지만 해도 천장에 붙어있던 검은 물체는 홀연히 사라져 있었습니다.
곧장 관리사무소로 내려갔습니다. 혹시 관리사무소에서 설치한 건지, 비밀번호를 누른 건지 등 물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소 측에선 금시초문이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구식 아파트였던지라 층층마다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 씨는 어쩔 수 없이 사비로 방범용 카메라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일 밤, 휴대폰에 카메라 알림이 떴습니다. 누군가 A 씨 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던 겁니다. 같은 층 주민이라기엔 남성은 A 씨 집 앞을 천천히 왔다 갔다 반복하다가 집 안 소리를 엿듣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까지 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A 씨는 영상을 경찰에 보내고 아파트 건물 CCTV를 뒤졌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인상착의의 남성의 출입기록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때."
이때부터 A 씨는 극도의 불안을 느꼈습니다. 몇 년간 편하게 지냈던 집이 한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공포의 공간'이 됐습니다. 경찰 수사는 시작됐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 단서에 A 씨는 며칠 동안 집 밖을 전전했습니다.
"사실 너무 불안해서 집에서 씻지도 못하겠는 거예요. 카메라가 어디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회사 좁은 화장실에서 씻었어요."
스스로 숨어야 하는 피해자
스토킹이었습니다. 가해자는 후배인 A 씨에게 호감을 표시해 왔습니다. A 씨의 몇 차례 거부 의사에도 연락은 계속됐습니다. SNS 가계정을 통한 염탐이 지속됐고, 공교롭게도 두 달 전 A 씨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도 왔습니다. 이런 정황들은 가해자가 그 선배라고 가리키고 있었지만 A 씨는 경찰에 알릴 수 없었습니다. 사회적 관계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저도 최대한 아니길 바랐고 경찰에게도 아닐 가능성에 대해 계속 얘기했어요."
소변이 집 앞에 뿌려지고 집 앞에 계속 몰카가 설치될 때도 A 씨는 병원에서 그 선배를 마주쳐야 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눠야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러내야만 했습니다. 피해 사실은 이미 명확했지만, 물증 없이는 A 씨는 스스로 숨어야만 했습니다.
불안함은 여전히 피해자 몫
해당 대학병원도 곧바로 남성을 업무에서 배제했습니다.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출근을 하지 못합니다. 병원 관계자는 "가해자 피해자 분리를 위해 즉시 업무배제했다"며 "징계 위원회도 곧 열어 적절한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 피해자들이 필요한 것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신당역 사건 발생 후 현장에 찾아 한 말입니다. 그 이후 더디지만 변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법무부는 반의사 불벌죄 폐지와 가해자 위치추적 조항을 담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피해자를 더 안전하게 보호하자는 차원입니다. 하지만 5개월이 흐른 지난 2월 15일에서야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왔습니다. 비슷한 내용으로 발의된 개정안들도 아직 계류 중인 상황입니다.
스토킹 범죄에 있어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 재범 위험성,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나옵니다. 스토킹 범죄는 이미 아는 관계,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약 75%입니다. 그만큼 피해자의 휴대전화 번호나 주거지, 직장 등을 알고 있을 확률이 크단 얘기입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많은가요? 저한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건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참에 A씨가 취재진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했을까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취재 경험에 비추어보면 '적지 않다'는 게 답변이었겠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줄 수 있는 진짜 위안이 무엇인지 모두가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보미 기자spri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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