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연의 사각지대] '마른 샘물' 된 토종 공격수, 키워야 산다

권수연 기자 2023. 3. 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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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저축은행 이한비ⓒ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한국배구는 공격수 한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요"

전(前) 삼성화재, 현 한국전력 소속 타이스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실제로 타이스는 해당 발언 뒤 "국제무대는 세터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명이 전부 공격대기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V-리그의 고질적인 문제인 '몰빵배구' 즉, 뛰어난 공격수 한 명에게만 공격을 몰아주는 배구는 이전부터 꾸준히 이슈가 되어왔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구단의 성적을 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국내 선수들을 '식물화'시키고 있다. 어쨌든 성적을 내고 이를 토대로 모기업 홍보효과를 끌어내야하는 구단의 외인 만능화 사상이 배구판을 점점 얼리고 있다.

단적으로 외인 '뽑기'에 성공한 구단은 그 해 우승, 최소 상위권 상승까지 점쳐진다. 실제로 남자부 KB손해보험이 이를 이뤄냈다. 매번 인터뷰때마다 "외인 용병이 조금 더 해줘야한다"는 발언이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하지만 외인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은 리그를 조금만 뜯어보아도 알 수 있다.

남녀부를 통틀어 올 시즌 유일하게 1천 득점(총 1,015득점)을 넘긴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를 보유했음에도 KGC인삼공사는 봄배구의 문턱을 밟지 못했다. '해결사' 모마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중하위권에 머무른 GS칼텍스도 마찬가지다.

외인 드래프트 1순위였던 니아 리드(미국)를 낚은 페퍼저축은행은 되려 이한비가 더 돋보였다. 오히려 이한비와 최가은, 박경현 등 꾸준히 경험치를 먹고 성장한 국내진이 팀을 받쳤다는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다. 뒤늦게 합류한 니아 리드는 터질 때 터지고 아닐 땐 아닌 기복이 있었다. 

KGC인삼공사 엘리자벳ⓒ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현대캐피탈 허수봉ⓒMHN스포츠 박태성 기자

주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남자배구의 사정은 약간 더 나은편이다. 이쪽 역시 외인 공격수들에게 공격을 몰아주는 플레이가 꾸준히 보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국내 윙 공격수들이 어느정도 자기 몫을 잡고 있다. 허수봉, 전광인(이상 현대캐피탈), 임동혁 (대한항공), 임성진, 서재덕(이상 한국전력), 김지한, 나경복(이상 우리카드) 등 외인 에이스들이 주춤할 때 잠깐 꺼낼 수 있거나 이미 주전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국내 대체카드들이 대기하고 있다. 

탑 용병인 레오를 데리고도 봄배구에 나서지 못하는 OK금융그룹, 비예나라는 비교적 준수한 외인카드를 골랐음에도 올 시즌 하위권에 머문 KB손해보험, 지난 시즌 맹활약한 러셀을 데리고도 하위권에 머무른 삼성화재 등을 보면 윤곽이 뚜렷하다. 국내진의 뒷받침이 한참 부족하다. 토종 윙의 한 자릿대 득점이 심심찮게 보인다.  

여자부로 가면 전망이 더 미지근하다. 국내에서 30대 초중반에 접어든 황혼기 선수들이 아직도 경기를 지배한다. 김연경(흥국생명), 표승주(IBK기업은행), 박정아(한국도로공사) 등이 득점 10위권 안쪽에 이름을 올렸다.

20대에서 강타를 연출하는 공격수는 정지윤(현대건설), 김다은(흥국생명), 육서영(IBK기업은행), 이한비(페퍼저축은행), 강소휘(GS칼텍스) 정도가 있다. 그나마 국내 무대에서도 자리를 완전히 잡고 주전 공격수로 득점을 꾸준히 내올 젊은 윙 자원이 많지 않다.

흥국생명 김연경ⓒMHN스포츠 박태성 기자
IBK기업은행 표승주ⓒMHN스포츠 박태성 기자

표승주 역시 수비형 산타나가 들어서며 아포짓 같은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 웃지 못할 시즌 커리어하이(누적 529득점, 전체 7위)를 찍었다. 본디 아포짓 역할을 수행해야 할 김희진은 무릎 컨디션 난조로 거의 출전하지 못하다 결국 수술로 빠졌다.

젊은 국내 공격수들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경험치를 먹고 일단 성장해야 하는 이유다. 언제까지나 베테랑들이 한 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다. 빠진 후에 허둥지둥 공백을 메우려고 하면 이미 늦었다. 

토종 공격수의 중요성은 최근 들어 국제무대에 나설 때마다 대두된다. 멀리 가지 않고 월드클래스 윙 공격수 김연경이 빠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2022 VNL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고전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한비, 육서영 등이 차기 국대 아포짓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더 다듬어야한다. 

국내무대로 시선을 돌리면 야스민 한 명이 빠진 현대건설이 우왕좌왕하다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와르르 무너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플랜B가 전혀 없었기에 36세 황연주가 몬타뇨 영입 전까지 버텨야 했다. 실제로 현대건설의 국내 윙 공격수들은 올 시즌 그 누구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현대건설 정지윤ⓒ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국내리그 지표는 대개 엇비슷하다. 가끔 토종 윙들이 반짝 다득점으로 활약하지만 그 외에는 대개 외인 공격수들이 득점의 절대적 비율을 차지한다.

'배구황제' 김연경은 "국내 유소년 선수들을 잘 키우고, 더 많은 국내 선수들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그러나 용병제에 근본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김연경이 용병제를 찬성했던 이유는 "국내 선수들이 좋은 점을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국내 선수 발전에 초점을 맞췄기에 용병제의 장점을 바라봤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용병의 등 뒤에서 오랫동안 함께 뛰었던 국내 공격수들은 경기력이 안정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 

전직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을 맡은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역시 "제2의 김연경을 기다리기보단 전체의 평균을 올려야한다, 김연경같은 선수는 3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배구연맹(KOVO)는 23-24시즌 아시아쿼터제를 열었다. 지원선수 명단을 살펴보면 남녀부 모두 날개 공격수가 각각 23명, 11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만일 이 가운데 외인 윙 공격수를 또 영입하게 된다면 토종 공격수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가성비 공격수'의 등장에 힘없이 밀리게 될까?

젊은 토종 윙 공격수의 비상이 더욱 간절해진 V-리그 무대다.  아시아 경쟁에서도 밀린다면 국내 공격수들의 앞길은 더욱 험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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