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의 시론]경제 활성화, 좌고우면 안 된다

2023. 3. 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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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산업부장
은행 파산 등 금융시스템 비상
2금융권 부동산 PF 위험 뇌관
상저하고 경기 전망마저 잿빛
수출·내수의 복합 불황에 신음
재고 쌓이고 고물가 부담 가중
기업·실물경제 활력 대책 절실

1997년 11월 터진 외환위기는 그 직전까지 별다른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기아와 한보 부도 사태가 심각성을 환기했지만, 국가 환란으로까지 연결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했다. 요란한 비상등이 울릴 때까지 경제주체들은 ‘태평성대’였다. 햇빛 넘어 저만치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깨지고 대형 금융기관까지 문을 닫는 전대미문의 대수술, 구조조정을 거쳤다. 불행한 선행 학습과 함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겪은 덕분에 최근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금융시스템 위기와 각종 경제지표의 추락을 심상치 않게 바라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금융시장.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은행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시장 불안현상은 오히려 더 확산될 우려를 낳고 있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뱅크까지 위기설에 휩싸였다. 국내 금융 시스템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자본 여력이 낮은 제2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노출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미 200조 원을 넘어섰다.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면 주택 경기 악화는 물론, 건설사 구조조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전국 미분양주택은 지난 1월 기준으로만 7만5359호로, 10년 2개월 만에 최대치다.

상저하고를 기대했던 경기 상황은 갈수록 살얼음판이다.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 충격 속에 소비와 투자 등 내수 위축으로 내·외수 복합불황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반도체 등 업황 악화 여파로 지난해 4분기 국내 500대 대기업의 영업익이 69%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19개 중 13개 업종에서 영업익이 감소했다. 올해는 더더욱 안갯속이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재고가 눈덩이처럼 쌓이는 등 심상치 않다.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 중 85개사의 실적 전망을 봤더니 62개 기업(72.94%)이 연초 대비 연간 영업익 추정치가 하향 조정됐거나, 적자 전환, 적자 폭이 확대된 것으로 파악됐다. 무역적자는 반도체 수출 부진 영향으로 올해 벌써 241억 달러를 기록했다. 12개월 연속 적자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수출 반등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성장률은 꺾이고 소비는 둔화하면서 춘래불사춘 형국이다. 연중 경기가 하강해 내년 상반기까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요란한 경착륙 전망도 나온다. 대학가의 구휼 대책으로 등장한 ‘1000원 아침밥’은 청년층의 실질 구매력 위축과 소비 침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구직을 포기한 채 그냥 쉬고 있다는 청년층 구직 포기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취업자 수는 줄고 실업자와 경매처분이 늘어나는 지표도 감지된다. 연간 세수 펑크 걱정도 불거지고 있다.

국회는 각종 경제지원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켜 기업과 실물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신속한 ‘패스트 트랙’ 협의를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반도체 투자 대기업에 최대 25%의 세액을 공제해주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경우,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기업 투자 심리를 반전시키고 국가전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투자는 일자리와 세수를 살찌운다. 한국의 국회의원이 일은 하지 않고 과도한 연봉(1억5280만 원)과 9명의 보좌관을 둔 채 각종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논란이 거센데, K-칩스법 같은 노력을 조금이라도 더 기울이면 비판 수위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터이다.

정부는 기업 규제를 더 풀고 혁파해야 한다. ‘한국의 시간’을 쓴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과잉 규제는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10∼20년 후 경제성장 동력을 상실시킨다. 4차 산업혁명에 진척이 없는 것도 아직 규제가 개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의성 있는 정책을 펴야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 지금 경제정책 대응의 실기와 방관, 무지는 곧 참사를 뜻함을 절실히 각인해야 한다. 돌궐제국의 명장이자 명재상이었던 아시테 톤유쿠크(645∼725)는 “성(城)을 쌓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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