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래도 김문기 모르냐"는 검찰에…이재명 측 "사진 보면 둘이 눈 마주친 적 없어"

하정연 기자 2023. 3. 2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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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재판은 증거 싸움이라고들 하죠. 반드시 증거에 의해서만 범죄 사실 인정을 허용한다는 '증거재판주의', 형사소송법의 대원칙 중 하나입니다. 증거가 지배하는 형사 재판, 전초전격인 첫 재판이 끝나면 통상 두 번째 재판에서 검사는 싸움의 실탄이 되어줄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검찰 측이 갖고 있는 패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한데요. 검사가 증거목록을 제시하면 피고인 측이 이를 확인하고, 피고인 측에서 증거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검사는 해당 증거의 증거 능력을 부여받기 위해 관련자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과정 등을 거칩니다.

지난 17일 열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두 번째 재판. 검찰 측은 본격적인 재판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둔 증거들을 제시하고 나섰습니다. 대장동 사업 담당자였던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성남시장 재직 당시 몰랐다는 내용의 허위 사실 등을 지난 대선 기간 퍼트렸다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겁니다. 검찰 측에서 법정에 제출된 증거 기록만 8,000쪽에 달하는데요. 이 대표의 두 번째 재판, 검찰이 이날 법정에 어떤 증거를 가져왔는지, <취재파일>을 통해 짚어보겠습니다.

▲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고인 측은 김문기 전 처장과 같은 팀장급 직원이 600명에 달해 기억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데 600명 중 김 전 처장과 같은 행위를 피고인과 공유한 직원이 얼마나 되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해외 출장에 가서 공식 일정에서 이탈해 같이 골프 등 여가 활동을 즐겼고, 김 전 처장은 피고인이 스스로 시장 재직 시절 자신의 치적이라고 언급했던 대장동, 1공단 공원화 사업 담당 부서장으로 수차례 대면 보고를 하며 피고인을 보좌했습니다. 김 전 처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피고인으로부터 표창장도 수여받았습니다. 설령 599명의 팀장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도 1명, 김 전 처장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두 번째 재판, 검찰 의견 진술 中)

이날 재판에서는 본격적인 증거 조사에 앞서 검찰 측과 이 대표 측의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증거 조사를 진행하기 전에 간단히 의견 하나만 밝히겠다고 나선 검찰, 준비해 온 PPT 자료로 지난 3일 열린 첫 재판에서 이 대표 측이 펼친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검찰은 우선 이 대표 측이 "시장 재직 때는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단 하나의 발언만을 전제로 주장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재판에서 '안다', '모른다'의 사전적 정의까지 끌고 나왔던 이 대표 측. '안다', '모른다'는 주관적 인지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개념이고 몇 차례 만났더라도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표현은 허위 사실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쳤었는데요. 검찰이 허위 사실 공표라며 기소한 이 대표 발언은 해당 발언 한 개가 아니라 4회에 걸친 인터뷰에서 나온 다수의 질문과 구체적 답변들인데 이 대표 측이 "김문기를 몰랐다"는 단 하나의 발언만 언급하며 전제 사실을 유리하게 축소, 왜곡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검찰은 성남시에 팀장급 직원만 600명에 달해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알 수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반박에 나섰습니다.
"피고인(이 대표)이 나머지 599명의 팀장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단 한 사람, 김문기 씨를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김 전 처장과 사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골프 등의 여가도 즐겼고, 위례 사업과 대장동 사업 담당 부서장으로 수시로 업무 보고를 받고 그 공로를 인정해 자신 명의의 표창장까지 주는 등 '기억에 남을 경험'을 서로 공유했다는 겁니다. 검찰 측은 "600명 직원 중 김문기와 같은 행위를 공유한 직원이 얼마나 되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경험적 행위를 공유한 사람이라면 기억이 단절될 수 없다는 게 경험칙과 상식에 부합한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검찰은 대담 형식의 방송 인터뷰에서 즉흥적으로 한 발언은 '사실의 공표'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 대표 측 입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장동 사업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김 전 처장이 사망한 뒤 지속적인 언론의 해명 요구가 있던 상황이었다는 점에 비춰봤을 때 방송에 출연해 중복된 질문에 4차례에 걸쳐 답을 했는데 이걸 즉흥적인 답변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렇게 검찰 측이 재판 시작부터 공세를 펼치자 이 대표 측은 검사의 말을 끊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증거 조사 진행 과정에서 다시 의견 진술을 할 권리는 법에 규정돼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며 항의한 건데요.
그러자 재판부는 "무슨 법적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냐"며 양측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보장했습니다.
 
지난 재판에서 호주에서 김 전 처장과 같이 찍은 영상과 사진 보여주셨는데 참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피고인과 김 전 처장이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정말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김 전 처장과 피고인의 관계 가 어땠는지 쉽게 알 수 있어 보입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두 번째 재판, 이 대표 측 변호인)

이에 질세라 발언 기회를 얻은 이 대표 측. 지난 재판에서와 같이 김 전 처장을 당시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우선 이 대표 측은 즉흥 발언이 아니었다는 검찰을 향해 "말꼬리를 잡아선 안 된다"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후보자들이 준비를 대담이나 토론을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구두로 하는 것들은 즉흥적일 수밖에 없고 불명확한 부분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면서 검찰 측의 앞선 발언을 문제 삼았는데요. 이 대표 측은 "방금 김 전 처장이 대장동 사업 비리 핵심을 대면 보고했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되면 대장동 사업이 아닌 비리 관련 부분을 보고했다고 읽힌다"며 "이걸 가지고 저희가 허위사실 공표라고 하면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하실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사님들이 글로 쓴 표현조차도 부정확할 수 있는데 말꼬리 잡는 게 되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뒤이어 지난 재판에서 검찰 측이 제시했던 사진과 영상 자료도 언급하고 나섰습니다. 성남 시장이던 2015년 1월 다녀온 9박 11일 해외 출장에서 김 전 처장과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인데요. 이 대표 측은 "호주에서 피고인과 김문기가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두 사람이 한 번도 눈을 마주친 일이 없다는 것"이라며 "당시 피고인과 김문기의 관계가 어땠는지 쉽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곁에서 주로 보좌한 사람은 유동규였던 것 같고, 김문기는 유동규를 보좌하기 위해 온 사람으로 보인다"며 "7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유동규를 보좌하던 김문기를 별도로 기억해 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변론했습니다.
 

검찰 "이래도 모르냐" 쌓아둔 증거 제시

오후 재판에서는 본격적인 증거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이래도 모르냐"며 준비해 온 증거들을 본격적으로 꺼내기 시작한 겁니다.
우선 검찰은 김 전 처장이 하급 직원 중 한 명이라 기억하지 못했다는 이 대표 측 주장을 깨기 위한 증거들을 하나씩 제시했습니다. 과거 이 대표와 김 처장이 함께 참석한 회의 회의록 그리고 기자회견 영상 등 두 사람 사이 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들이 대표적인데요. 대장동과 1공단 사업 주무 담당 부서장으로 수차례 대면 보고를 그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까지 받았는데 기억을 못 할 수 있냐는 겁니다. 검찰은 당시 성남 시장 집무실 내부 사진까지 증거로 들고 나왔습니다. "테이블이 너무 좁아 이 대표가 회의 참석자 명찰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라고 말입니다. 대장동 주민들 단체 채팅방 대화 내용 등도 증거로 제시했는데요. 검찰은 "채팅방 대화 내용에 따르면 대장동 토지주들은 모두 김 전 처장의 존재와 역할을 알고 있었다"며 "현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김 전 처장이 성남시 입장을 대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단순 하급 직원이라고 하기엔 토지주 보상 협의 문제 등 각종 민감한 현안을 도맡아 처리했고, 이 대표의 공약 사업 담당 부서장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다는 겁니다.
이후 검찰은 김 전 처장이 이 대표가 경기지사에 당선된 이후로도 쭉 관계를 이어 왔다며 관련 증거들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전 처장이 2021년 11~12월 '이재명'으로 된 연락처로부터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받은 기록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신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숨진 김 전 처장 휴대전화 주요 일정에 이재명 시장 생일이 저장돼 있던 사실까지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이에 이 대표 측은 "도지사 이후의 일은 (혐의와) 무관한 것 아니냐"며 거세게 항의했고 검찰 측은 "이후에도 관계를 계속 이어왔던 만큼 성남 시절 시절 기억이 안 날 수가 없다는 걸 말하려던 것"이라고 공방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유동규 "거짓말 좀 그만했으면"…이재명 대표와 31일 법정 대면

질문에 답하는 유동규 전 본부장 (사진=연합뉴스)

같은 날 다른 재판에 출석했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검찰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한때 이 대표의 측근 중 한 명으로 불리던 유 전 본부장은 2015년 1월 6~16일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대표, 김 전 처장과 함께 호주, 뉴질랜드로 출장을 갔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유 전 본부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처장이 당시 2명만 탑승할 수 있는 카트를 직접 몰아 이 대표를 보좌했다며 "(이 대표가) 거짓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에게 '김 팀장, 거기 (골프공) 있어?' 이런 말도 했다"며 "이런 관계들이 서서히 다 드러나고 가면이 벗겨질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1차 수사 때만 해도 침묵을 지켰던 유 전 본부장.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재수사가 이뤄지자 그간의 태도를 바꿔 이 대표에 불리한 폭로성 발언을 이어갔는데요. 그는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이 대표 발언에 배신감을 느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게 됐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오는 31일 열린 이 대표의 세 번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입니다. 두 사람의 법정 대면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제기 이후 이번이 처음인데요. 유 전 본부장이 이 대표 면전에서 어떤 작심 발언을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하정연 기자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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