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OO해야 성공? 수능의 비밀, 30년 기출문제 분석해보니
지난달 20일은 종로학원, 강남하이퍼학원 등 주요 입시학원의 재수 정규반 개강일이었습니다. 각 학원에서는 하나같이 검은 점퍼, 운동화 차림을 한 수험생들이 몰려 들어오는 풍경이 연출됐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학원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다시 웃을 수 있어요. 단, 힘드셔야 해요."
■유난히 뜨거운 재수 열기…N수·장수·군수?
우리나라에 젊은이 수가 점점 줄고, 수험생도 2000년대 초반보다 절반 수준으로 꺾였다는데, 재수학원에 오면 여전히 그 열기, 그 밀집도가 더 뜨거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졸업생, 즉 N 수생 비율은 28%를 기록해 22년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삼수생, 이른바 장수생이라고 그러죠. 이런 학생들이 많아졌고, 재수생이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또 군대에서도 재수를 하는 '군수'라는 용어들까지 일반화되는 등 재수생의 층 자체가 넓어졌습니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수험생들, 입시학원 관계자, 교사 등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재수하면 오른다'는 겁니다.
"양치기라고 하는데, 많이 하면 좀 느는 것 같더라고요." (수험생)
"문제의 조건들을 뜯어보면 결국에는 전에 봐왔던 기출 문제들이 물어보고 있는 것을 또 물어보고 있다는 걸 체감을 하게 돼요." (수험생)
"학원의 역할은 좀 더 빠르게 속도를 내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거에 대한 여러 가지 팁이라든지 힌트를 줄 수 있는 부분이 하나가 있고, 그리고 또 응용할 수 있는 기출 문제를 제공하는 것."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
■N수 해야 성공하는 수능…93년 수험생 "우리 때는.."
실제로 국회 교육위원회 강득구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학년도부터 2023학년도까지 4년 동안 전국 의대 정시모집에서 N수생이 77.5%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3수생과 4수생이 35.2%, 3분의 1 이상이었습니다. 고 3 재학생이 정시로 의대에 간 비율은 21.3%였죠. 정시가, 수능이 N수를 요구하는 셈입니다.
90년대 수능을 치렀던 수험생들은 이런 얘기가 다소 낯설게 다가옵니다. "친구 중에 평소에 학교 공부는 많이 안 했는데 매일 책만 읽고 있는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오히려 수능을 월등히 잘 보는 거예요. 아이큐 테스트를 받고 있나, 라고 생각되는 문제들도 수능에 좀 있었던 것 같거든요."
당시 수능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긴 하지만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통하는 시험은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다른 상황에 대입할 수 있는지, 곧 사고력이 뛰어난지를 평가하는 게 수능의 제1 목표였습니다. 수능시험의 설계에 참여한 박도순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의 말도 그렇습니다. "암기를 해서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를 기대하고 낸 겁니다."
■시사기획 창, 최초로 30년 어치 수능 기출 AI 분석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생겼을까요? 수능 문제가 변한 것은 아닐까요? 변했다면 예전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시사기획 창은 이 의문을 과학적 분석으로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요? 30년 어치의 모든 수능 기출문제를 전부, 통째로, 일일이 값을 매겨 인공지능이 그 경로를 쫓는 방식으로요.
과목은 30년간의 연속성을 고려해 국어영역과 수학영역으로 정했습니다. 한 문제에 기준이 10개 이상 있습니다. 이 기준은 수능의 시행계획과 교육부가 제시한 각 과목의 교육과정 목표를 바탕으로 정했습니다. 예를 들면 국어영역 문제의 경우 ①어휘·어법 ②사실적 이해 ③추론적 이해 ④비판적 이해 ⑤창의·적용… 이런 식입니다. 문제가 묻는 게 뭔지를 파악하는 거죠. 여기에 지문의 길이와 지문에 딸린 문항 수, 지문의 영역 같은 분석 기준도 추가했습니다. 대분류 기준만 10개고 소분류 기준은 여기서 더 뻗어 나갑니다.
각각의 문제가 이 기준에 해당될 경우 태그, 그러니까 체크를 하게 됩니다.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 과목별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들께서 작업을 해 주셨습니다. 전체 설계는 2028 대입 정책 자문회의 위원이신 한양대학교 배영찬 교수님과 함께했습니다. 그렇게 확보한 30년 어치의 문제 데이터를 인공지능 분석업체 (주)맨드언맨드에서 작업했습니다. 그 결과를 지금 살짝 보여드리죠.
수학 영역, 30년 어치의 모든 문제를 아주 작은 점으로 3차원 공간 안에 뿌려 놓은 겁니다. 파란 점들과 초록 점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띕니다. 파란 점은 2001학년도부터 2010학년도까지의 수능 수학 문제고, 초록 점은 2011학년도부터 최근까지 문제들입니다.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얘기는, 문제의 성질이 아주 다르다는 겁니다.
■1997학년도 수능 수험생이 대단한 이유, AI가 말해준다
빨간 점은 수능 초창기인 1994학년도부터 2000학년도까지의 문제죠. 잠깐, 그런데 빨간 점 중에 나 혼자, 저 멀리 파란 점 아래 떨어져 있는 저 무리는 뭐냐고요? 역대 최고난도 불수능으로 악명을 떨친 1997학년도 수능의 수학 문제입니다. 주변에 1997학년도 수능 치신 분들께 '존경한다'고 한마디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수능 30년 역사 중에 정말 특이하고 지독한(?) 시험을 치르셨습니다.
저 시대적 구분은 어떤 기점으로 생겼고, 다른 건 알겠는데 각각 어떤 성질로 다른 거냐고요? 최근의 수능이 예전이랑 다른 게 어떤 영향을 주냐고요? 그리고 국어영역 결과는 어떤지도 궁금하시죠? 3월 28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30살 수능, 길을 잃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서른 살 수능, 이대로 늙어도 괜찮을까?
N 수가 늘어난 게, 수능 문제가 변해서만 그렇다는 건 물론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대학 서열과 학벌 문화. 더 줄어든 '안정적 일자리' 속에서 수험생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 번 더'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관건은 그렇게 온 힘을 쏟아붓는 수능이 과연 어떤 시험이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죠. 그리고 30년 전에 그랬듯, 여전히 인재의 등용문으로 유효하냐는 것일 겁니다. 한번쯤 생각해보시죠. 3월 28일 화요일 밤 10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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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원 기자 (ai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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