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의 ‘선택적 정의’, 건설현장 사망사고에는 ‘침묵’

송진식 기자 입력 2023. 3. 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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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노조 비판뿐…노동자 사망 언급 없어
건설업체 불법 고발대회서도 ‘사용자 편들기’
3월 16일 콘크리트 블록으로 된 옹벽이 붕괴돼 노동자 3명이 사망한 충남 천안의 공사현장 모습 / 연합뉴스

[주간경향] 지난 3월 16일 오후 2시 47분경 충남 천안의 한 반도체 관련 업체의 공장 신축공사 현장. 와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높이 4.5m의 옹벽이 무너져내렸다. 공사현장의 절개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쌓아두었던 콘크리트 블록 수십 개가 옹벽 바로 아래서 배수로 작업을 하고 있던 노동자 3명을 그대로 덮쳤다. 119구조대가 곧장 출동했지만 2명은 이미 심정지 상태. 다른 1명도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배수로를 내려고 땅을 파려면 작업 장소와 주변, 특히 땅파기로 옹벽 기초가 무너져내릴 위험이 없는지, 옹벽은 튼튼한지 등 충분히 확인했어야 한다”며 “현장 관리가 소홀해 발생한 전형적인 안전사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인도네시아 출장 중이었다. 천안 사고가 있던 당일 오후 8시쯤 원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우리의 다양한 도시개발 경험을 활용해 양국 발전의 계기로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튿날에도, 이틀 뒤에도 원 장관은 페이스북에 글을 썼지만 출장 얘기뿐이었다. 지난 3월 18일에는 현지 한국인 노동자들과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내걸었다.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해도 주무부처 장관은 아랑곳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올해 건설현장 43명 사망사고, 페북 언급은 ‘0’

원 장관이 천안 사고 소식을 몰랐을 리 없다. 사고 발생 전인 지난 3월 16일 오전에도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불법행위를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을 만큼 해외 출장 중에도 페이스북을 즐기는 그다. 평소 페이스북을 통해 국토교통 관련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기로 유명한 원 장관이지만 유독 찾아보기 어려운 글이 있다. 바로 건설현장의 사망사고 관련 글이다.

지난 3월 22일 기준 산업재해 예방 안전보건공단의 집계를 보면 올해 들어 41곳의 건설현장에서 43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다. 높은 공사현장에서 추락하거나, 차에 치이거나 공사 자재에 맞아 사망하는 등 안전사고가 대부분이다.

이틀에 한 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원 장관이 페이스북에서 사망사고를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망사고의 원인이 됐을 건설업체들의 안전관리 소홀,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 무리한 작업지시 등의 문제 역시 거론한 바 없다. 원 장관은 평소 “건설현장에서 안전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대원칙”이라고 밝혀왔다.

반대로 원 장관은 올해 하루가 멀다고 페이스북에 노조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올 초부터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향해선 “기생하는 독”, “조폭” 등의 거친 용어를 동원해 페이스북에서 맹비난했다. 결국 건설노조는 지난 2월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모욕 등의 혐의로 원 장관을 고소했다. 고소 이후 발언 수위가 다소 낮아졌지만 원 장관은 여전히 타워크레인 월례비 문제, 노조전임비 문제 등을 들어 노조에 대한 날선 발언을 이어가는 중이다.

천안 사고 이틀 뒤인 18일 원 장관이 해외 출장 중 올린 현지 한국인 노동자와의 기념촬영 사진. 원희룡 장관 페이스북

국토부도 건설현장 사망사고와 노조 문제를 다루는 데 입장 차이를 보인다.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조사를 맡는다. 국토부도 중앙사고조사단을 꾸려 현장조사에 나서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해 이미 사고가 잊힌 뒤다. 피해자 개인정보보호 등의 명목으로 사고가 난 현장이나 원청·도급 업체의 이름도 공개되지 않는다.

천안 사고의 경우 불법 하도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발생 1주일이 넘도록 파악된 게 없다. 현재까지 국토부가 사고와 관련해 밝힌 공식 입장은 “사고대응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5줄짜리 짧은 ‘보도참고자료’가 전부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찰에서 관련 서류를 모두 가져간 탓에 불법 하도급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찰수사를 통해 확인되기 전까진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 문제에 대해선 경찰수사와 관계없이 단정적인 입장을 취해온 국토부다. 국토부는 지난 1월 19일 ‘건설현장 (노조) 불법행위 피해사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건설업체들이 단순 신고 접수한 내역을 들어 “총 2070건의 불법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고, 최근 3년간 1686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노골적인 건설업체 편들기, 공정성은 어디로

사용자 측에 해당하는 건설업체를 두둔하는 정부의 편향적인 태도는 원 장관이 지난 3월 8일 전문건설협회 주최 ‘건설현장 불법 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 참석해 한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인사말에 나선 원 장관은 “건설업 하면 일용직 노동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많은데, 건설현장을 파악하다 보니까 제일 불쌍한 게 전문건설인”이라며 “회계처리를 하지도 못하는 돈을 여기저기 뜯겨야 하는, 소위 노조의 간판을 단 곳에 빨대를 빨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가 쏟아졌다. 노사 문제에 있어 공정함을 유지해야 할 장관이 사용자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가서 노골적으로 노조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3월 8일 전문건설협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토부 제공

원 장관은 “거푸집 (작업)은 국내 근로자들이 아무도 안 하려고 해 외국인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도급 자체가 법이 안 맞다 보니까 서류제출 자체를 할 수가 없다”며 불법 외국인 노동자 채용을 이해한다는 듯한 발언도 했다. 이어 “노조의 탈을 쓴 불법세력에 온갖 횡포를 당하고 돈을 뜯기고 모욕을 당하고 현장통제권을 뺏겨도 감당해야 한다”며 “경찰한테 신고하면 ‘합의 보세요’ 하고, 근로감독관은 노조편을 드는 등 그동안 정부가 제대로 못 한 것에 대해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죄송하다”고도 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연신 박수가 쏟아졌다.

업체들이 건설현장에서 벌이는 불법행위에 대해선 잠깐 언급에 그쳤다. 원 장관은 “대신 전문건설인들도 페이퍼컴퍼니, 벌떼입찰, 임금 떼어먹는 일 등 없애야 한다”며 “그런 어물전 꼴뚜기 같은 행동들 때문에 우리가 단체로 욕을 먹고 노조에 빌미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희룡의 관리가 윤석열 대통령의 관리”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모든 관심과 모든 지원과 모든 공권력이 뒷받침돼서 집중 투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 장관의 인사말은 10여 차례의 박수와 함께 마무리됐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노조의 정당한 활동에 대해선 단속에 열을 올리면서 정작 정부가 개선하고 바로잡아야 할 건설사들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나 불법고용, 불법시공, 부실공사 등의 불법행위는 외면하고 있다”며 “건설사에 사과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행된 부실공사로 피해를 본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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