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민주주의 위기’ 여전…‘첫 3선’ 룰라도 난관
미 트럼프 지지자들 의회 난입과 ‘판박이’
[주간경향]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겠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023년 1월 1일(현지시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세 번째 임기를 공식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날 취임으로 룰라는 12년 만에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임기 시작 일주일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룰라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극우 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의회, 대법원, 대통령궁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 수천명은 지난 1월 8일 수도 브라질리아에 있는 입법·사법·행정 3부 기관에 침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건물을 점령했다.
난동은 경찰이 고무탄과 최루액을 사용해 진압에 나선 뒤에야 진압됐고, 시위대 수백명은 체포됐다. 룰라는 3부 수장과 공동성명을 통해 폭동을 비판하고, 엄중한 처벌 의사를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정상 역시 성명을 내 브라질에서 일어난 폭동을 규탄했다. 다음날 브라질 시민들은 폭동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룰라의 집권과 수사 그리고 구속
대선에서 수차례 낙방을 거듭했던 룰라는 네 차례 도전 끝에 2003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후 2007년 재선에 성공했다. 브라질 역사상 처음으로 엘리트가 아닌 가난한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경제 부도 위기에 처한 브라질은 룰라 집권 이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달 30달러씩 제공하는 ‘보우사 파밀리아’ 등 적극적인 빈곤층 지원 정책을 통해 약 2000만명의 브라질 국민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연금개혁, 브라질판 뉴딜 정책, 브라질 최초 월드컵·올림픽 유치에 성공했고, 이 시기 브라질은 사상 최저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룰라의 퇴임 직전 지지율은 87%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민주화 운동가 출신으로 룰라 정부의 장관이었던 후계자 지우마 호세프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2010년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룰라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는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지도자였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까지 거론됐다.
이랬던 룰라가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선 곧 대대적인 수사에 직면했다. 브라질 내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브라질 역대 최고의 인기 대통령은 한순간에 ‘부패 정치인’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결국 2018년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구속되면서 순식간에 ‘수감자’ 신세로 몰락했다. 사법부는 1심에서 룰라에게 9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상고법원에서는 12년으로 증가했다. 이는 2021년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뒤집혔지만, 그 전까지 룰라는 580일 동안 감옥에 투옥돼야 했다.
룰라에 대한 수사를 주도한 것은 세르지우 모루라는 브라질 엘리트 연방판사였다. 그는 일명 ‘세차작전’으로 광범위한 반부패 수사를 벌였다. 노동자당의 4번에 걸친 정권 창출에 보수정당, 언론, 기득권층, 종교계의 반감이 심했다. 이런 가운데 명확한 물증 없이 룰라와 호세프는 부패 혐의자로 내몰렸다. 모루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검증 없이 전달되면서 의혹과 수사만으로 전·현직 대통령 2명의 범죄는 기정사실화돼버렸다. 결국 정부·여당 인사들이 잇따라 구속됐다. 의회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호세프가 재정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국영은행의 자금을 사용(재정회계법 위반)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추진했다. 여당은 국영은행 자금을 사용한 것은 관례이기 때문에 불법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지만, 경제위기로 민심이 나빠진 상황에서 결국 정책적 실수에 가까운 예산작성 규칙 위반으로 재선 후 2년여 만인 2016년 탄핵당한다. 호세프의 탄핵과 룰라의 구속으로 브라질은 좌우 양극단으로 더 극심하게 분열된다.
보우소나루 집권과 브라질 민주주의 위기
호세프가 탄핵당하고 룰라가 구속되면서 노동당 정권이 몰락하자 2018년 대선에서 과거 군부독재 시절 군인 출신인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브라질 민주주의는 급속도로 몰락해갔다. 그는 거침없는 혐오 발언과 막말을 일삼았다. 과거 인권탄압을 저질렀던 군부독재 정권을 찬양하는 발언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남미의 트럼프’라는 별명답게 총기 소유 권리 확대와 임신 중단 반대, 반이민 정책, 환경규제 철폐, 코로나19 경시 등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정책을 추진했다. 또 흑인, 원주민,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등에 대한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그들을 배제했다. 아마존 환경은 급격히 파괴됐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브라질의 시민권은 제한되고 국민의 범위는 축소됐으며 군부와 직계가족의 영향력은 확대됐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2022년 대선에서 재등장한 룰라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그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표를 도둑맞았다”며 선거가 조작됐다고 말하고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현재 보우소나루는 대선 불복 폭동 조장 혐의를 비롯해 다양한 범죄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른 상태다. 브라질 정부는 그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그는 명확히 응답하지 않은 채 여전히 미국에 머물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 미국·브라질 그다음은…?
오랜 군사독재와 쿠데타로 불평등과 인권탄압이 지속됐던 브라질은 1979년 이후 단계적인 민주화 정책을 펴 1989년 처음 직접선거를 시행했다. 그러나 오랜 독재와 백인 주류 계층이 자리한 브라질의 기득권은 공고했다.
브라질의 대선 불복 폭동은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미 연방의회를 습격한 미국의 1·6 의회 폭동과 ‘판박이’다. 브라질 싱크탱크인 이가라페 연구소의 공동설립자인 호베르트 무가는 “브라질 시위대의 습격과 미국 ‘1·6 폭동’ 사이의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라면서 “이번 집단 폭동은 예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트럼프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수년간 가짜뉴스에 길든 결과가 이번 사태라는 분석이다. 브라질과 미국뿐 아니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우파 포퓰리즘이 확산하고, 부정선거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위기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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