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위기, 독일로 향하나?... 도이체방크 주가 8% 넘게 급락
미국과 스위스에서 시작된 은행권 위기가 독일을 향하고 있다. 글로벌 은행 위기 공포가 독일 최대 투자은행(IB) 도이체방크 주가가 급락한 것.
24일(현지 시간) 독일 증시에서 도이체방크 주가는 8.5% 하락했다. 장중 한 때 14%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독일 내 도이체방크의 라이벌 은행 코메르츠방크 주가도 이날 9% 떨어지는 등 유럽 은행 전반으로 시장 불신이 증폭됐다. 이로 인해 유로스톡스600 은행지수도 3.8% 하락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촉발한 은행 위기가 상대적으로 건강한 독일 도이체방크에까지 미친 것은 투자자 공포가 극에 달했음을 알리는 방증이란 의견이 많다.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크레디트스위스(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약 170억 달러(약 22조 원) 규모 코코본드(조건부 전환사채)의 일종인 AT1이 모두 상각 처리돼 휴지조각이 되면서 불씨를 남겼다.
코코본드는 은행 재무가 악화됐을 때 채권 보유자가 손실을 떠안는 채권이다. 유럽에서 소개돼 주로 유럽과 아시아 은행들이 발행해 온 채권이다. 일반적으로 전문 채권 투자자 또는 헤지펀드가 보유하지만, 아시아의 소매 및 자산관리 투자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현재 전세계 AT1 채권 시장 규모는 2750억 달러(약 357조8850억 원)로 추정된다.
코코본드는 파산 변제 순위가 일반적으로 채권보다 뒤지지만 주식에는 앞섰다. 하지만 스위스 당국이 CS 주주에게 UBS 주식을 일정 비율로 교환해 주면서 코코본드는 상각해버려 ‘은행이 순식간에 파산하면 보유 채권값은 0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남겼다.
이 때문에 AT1 발행이 집중된 유럽은행 중에서도 CS처럼 구조조정 위기를 겪은 도이체방크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CS처럼 수년간 위기를 겪은 도이체방크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 (위기라는) 언급이 급증하며 ‘우려 은행’으로 지목돼 주식 투매 현상이 빚어졌다”고 24일(현지 시간) 분석했다.
부도 가능성을 가리키는 도이체방크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최근 급등한 것도 주가 하락 원인으로 작용했다. CDS 프리미엄은 22일 1.34%포인트에서 23일 2.03%포인트로, 24일 2.2%포인트로 올랐다.도이체방크는 각종 스캔들 속에 구조조정 위기를 거쳤지만 2019년 이후 재무건전성이 건강한 은행으로 꼽혀 왔다.
이날 벨기에 브뤼셀 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24일 기자들에게 “유럽 은행 시스템은 안정적”이라며 “도이체방크는 CS가 아니다. 수익성이 좋은 은행”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은행 위기가 길어질 것이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씨티그룹은 “비이성이 지배한 시장이 희생자를 찾고 있다”며 은행 위기 공포가 건강한 은행까지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숄츠 총리의 말대로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순수익이 전년 대비 159% 상승한 50억 유로를 기록했다. 2007년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SVB 파산 사태 전부터 대규모 예금 인출과 손실 누적에 시달린 CS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이 142%에 달해 유동성도 풍부하다.
하지만 도이체방크는 AT1 비중이 높은 데다 CS처럼 돈세탁 혐의를 비롯해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전력이 있어 우려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붕괴 조짐이 보이는 상업부동산 노출 비중이 높다는 지적과 헤지펀드들이 시장 불안 심리를 이용해 은행주 하락에 집중 베팅한 점도 영향을 줬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은행 등은 CS 코코본드 상각은 스위스 당국의 결정일 뿐, 유럽연합(EU)과 영국에선 변제 순위를 지킬 것이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중소형 은행 대규모 인출 위기, 유럽 은행 채권 상각 위기가 겹치며 불안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보통주자본(CET1) 대비 AT1 채권 비율이 유럽 평균(16%)보다 높은 바클레이스(28.2%)와 소시에테제네랄(20.7%), 스탠다드차타드(19%), 도이체방크(17.7%), HSBC(16.6%) 등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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