뮐한의 『현대 중국의 탄생』 “아직 진행중… 공산당의 보수주의와 역동적 현실 간 균열 심화” [김용출의 한권의책]

김용출 2023. 3. 2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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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곧 중화민족의 꿈입니다.” 2주 전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중국의 새로운 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은 2012년 11월29일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 ‘부흥의 길’을 참관한 뒤 특유의 근엄한 표정을 짓고서 이른바 ‘중국의 꿈(中國夢)’ 이야기를 꺼냈다. 민족주의적 서사를 한껏 끌고 간 시진핑의 화두 ‘중국몽’은 세계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의 한 상징이 됐다.

중국은 급성장한 경제를 바탕으로 주변국과 군사 외교적 마찰도 마다하지 않았고, 심지어 미국과도 전방위적 전략패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2013년 중국 경제는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8년 3%에서 12%로 4배 이상 늘어났고, 2015년에는 14.8%까지 늘어났다. 명목 국내총생산은 1978년에 비해 75배로 늘어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가지게 됐다.

쑨원
경제력을 바탕으로 급격히 부상한 현대 중국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서구적 근대로 수렴할 것이라는 서구적 낙관론은 이미 사라진 가운데, 화려한 ‘중국 모델론’이나 ‘대안적 발전 경로론’으로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악마화하면서 혐오만 해야 할까. 모두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중국을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30여 년 전 각각 『신중국사』 와 『현대 중국을 찾아서』 를 통해서 중국 이해의 새 지평을 열었던 존 페어뱅크와 조너선 스펜스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는 저자 클라우스 뮐한은, 최근 중국의 급격한 부상 배후에 있는 역사, 즉 앞선 번영의 시기부터 쇠퇴의 국면과 그 사이의 위기, 지난 세기의 집요한 회복 노력을 알아야 한다며 전통적인 중국 서사를 재검토하고 현대 중국의 역사를 재개념화할 것을 제안한다.

“부상하는 중국을 이해하려면 그 배후에 있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즉, 앞선 번영의 시기, 쇠퇴의 국면과 그 사이의 위기, 그리고 지난 세기의 집요한 회복 노력을 알아야 한다. 역사적 시작은 과거의 영광과 실패 이면에 있는 이유도 드러낼 것이다.”

즉, 오랫동안 서구 역사가와 사회과학자들은 중국이 장기적으로 서구의 모델과 제도를 채택할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최근 중국의 급격한 대두로 이러한 견해가 의심받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현대 중국 서사를 재검토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재개념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저자는 그러면서 책 『현대 중국의 탄생』 (윤형진 옮김, 너머북스)에서 정부와 경제, 주권과 국경, 천연자원 관리, 지성사 영역을 중심으로 제도라는 렌즈를 통해 1644년 청제국에서 작금의 시진핑 시대까지 중국 현대화 400년의 궤적을 새롭고 깊이 있게 풀어낸다.

제1부 ‘청의 흥망’에선 1644년부터 1900년까지 청의 위엄과 함께 지도적 제국이던 청이 19세기 세계적 강국들 사이에서 뒤처지게 된 쇠퇴의 원인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강하고, 부유하며, 정교한 유라시아 제국이던 청 제국은 18세가 중반 정점에 도달했을 때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지배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를 운영했다. 하지만 1830년 이후 안으론 태평천국의 난이, 밖으론 아편전쟁으로 나라 주권을 위협받으면서 이중의 위기와 과제 앞에서 급격한 추락에 직면했다. 2부 ‘중국의 혁명들’에선 1900년에서 1949년 사이에 회복과 국가적 각성을 경험하면서 1911년 신해혁명과 공화국 수립, 1928년 난징에서 장제스 주도로 중앙정부 수립, 중일전쟁 등 새로운 공화국 시대의 중국 이야기를 다룬다. 3부 ‘중국 개조하기’에선 1949년부터 1977년 사이 초기 중화인민공화국의 특징과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사회주의 사회로 개조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시도를 비판적으로 탐구하고, 마지막 4부 ‘떠오르는 중국’에선 1978년 덩샤오핑의 포용적인 경제 제도가 도입된 이후 중국이 어떻게 놀라운 경제적 부흥을 이끌어내는지 살펴본다.

마오쩌둥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현대 중국 만들기를 부와 권력으로 가는 길에 있던 제도적 약점과 기능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100년 이상 이뤄지고 있는 장기적 변화이며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즉, 1978년 이후 40여 년간 이뤄진 개혁개방은 단지 최근의 장일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 이는 흔히 중국의 부상은 1978년 덩샤오핑 집권 후 40년 동안 이뤄졌다고 여기는 통설과는 크게 다른 주장일 뿐만 아니라, 냉전 경쟁과 국가적 부활이라는 표준적 해석을 넘어서는 담대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저자는 청제국 말기에 겪었던 민족주의 확산과 새 군사 기술의 출현, 세계적 기후변화 등의 도전은 다른 세계적 제국들 역시 공통적으로 직면한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적은 자원으로 중국 통제를 가능하도록 했던 청의 ‘최소주의 통치’ 원칙이 19세기 중앙과 지방 관계의 불안을 초래하고 개혁과 국민국가로 나아가는데 장애가 됐다고 분석한 부문 역시 매우 흥미롭다.

덩샤오핑
한국과 관련한 내용도 나온다. 예를 들면, 1894년 한반도 안팎에서 발발한 청일전쟁에 대해선 한국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중일간의 충돌로 바라봤고, 1950년 한국전쟁에 대한 개입의 경우 사회주의 진영의 결속 차원에 이뤄진 사례로 바라보면서도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주저했지만 소련의 지원을 잃을까봐 두려워서 스탈린의 요구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했다.

결국 저자는 중국의 부상은 아직 부문적이고 미완이며 오히려 부와 권력의 성취에도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고 현재를 진단한 뒤, 중국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중국은 전통적인 소련 스타일의 공산주의 국가와 멀어졌지만, 사유재산권의 보호가 없고, 국영기업이 여전히 국가 경제의 핵심을 지배하고 있으며, 공산당이 국가와 사회 전체를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다며 사유재산제와 시장 경제를 가진 민주주의 체제 역시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공산당의 정치적 보수주의와 역동적인 사회 현실 간 균열이 깊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1978년 이후의 경제적 부상도 지속될지 알 수 없다고 전망한다.

“현대 중국에서의 구조적인 사회적 경제적 전환은 중국과 세계 시장이 조만간 해결해야 할 거대한 부채를 만들어낸, 빠르고 전례 없지만 불균등한 발전의 징후다. 중국 그리고 세계는 결국 더 온건하고 지속가능한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책은 최신 연구 성과와 실증적인 자료를 종합해 정리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서술해 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존 페어뱅크의 『신중국사』 , 조너선 스펜스의 『현대 중국을 찾아서』 가 선구적 현대 중국 입문서였다면,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반영한 이번 책은 새로운 표준 입문서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겠다.

시진핑. 신화연합뉴스
아울러 저자가 자신의 시각과 해석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도 객관성과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도 미덕이다. 즉, 중국 중흥 서사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중국 모델론’이나 ‘대안적 발전 경로론’, 결국 서구적 근대로 수렴할 것이라는 서구적 낙관론을 거부하는 한편, 최근의 현실 상황을 역사와 학문에 과도하게 투사해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악마화하거나 혐오하는 시각 역시 배제하고 있다.

요컨대, 최신 연구 성과를 적극 반영해 체계적으로 종합하면서도 객관성과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새 시대의 중국 현대사 입문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현대 중국을 역사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원제는 Making China Modern: From the Great Quing to Xi Jinping.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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