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우영우가 사랑한 지하철 미술관

이영신 배재대 대외협력교수 2023. 3.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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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신 배재대 대외협력교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다. 우영우가 푹 빠져있던 동물은 '고래'. 우영우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고래들이 등장한다. 우영우의 첫 출근을 축하하며 지하철을 따라오는 고래가 그려지고, 그녀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땐 혹등고래가 나타난다. 그중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자리 잡은 서울메트로미술관내 미디어아트 정원 '광화원'에서도 고래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1986년 문을 연 메트로미술관은 하루 3만 명 이상이 이용한다.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주변 광화문 일대 관광지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5G와 증강현실(AR)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우영우가 사랑하는 고래를 비롯한 여러 실감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초대형 화면에 둘러싸여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경이로움에 빠져 힐링이 된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2019년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설치한 지하 예술정원을 조성했다. 영등포시장역 또한 '문화예술철도' 사업으로 리모델링했다. 지역마켓을 열 수 있는 '마켓마당', 작품 전시와 소규모 강연이 가능한 라운지,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튜디오가 들어섰다. 지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벽면엔 예술 작품을 전시한다. 서울의 가장 대중적인 공간 중 하나인 지하철역이 일상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오늘날 70억 지구 인류 중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산다. 지하철은 수십억 명 도시인 일상 속에 존재한다. 요즘 지하철역은 단순히 목적지로 가기 위한 기능적인 공간에서 새로운 도시 예술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역구내에 쉼터와 수유실 등 시민 편의 공간을 운영한 게 버전 1.0이라면, 유휴 공간에 예술작품들을 설치하거나 실내 정원을 만든 게 버전 2.0이다.

대전에서도 이응노미술관과 협업을 통해 시청역, 대전역, 정부청사역에 이응노갤러리를 조성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은 단순히 '보여주기' 식에 끝나지 않고, 역별 특성에 맞는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하철역을 전시 공연 등 '일상 속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건 세계적 트렌드다. 영국 런던 지하철은 자격증 취득자에게 버스킹(Busk in London)을 허용한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통공사(MTA)도 오디션에 합격하면 허용된 지하철 장소에서 자유롭게 버스킹하도록 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 10위안에 드는 곳도 모두 설계 자체부터 예술성이 있거나, 각 지역의 특색을 담은 곳이다.

지하철과 아울러 침체된 지하상가도 접근성이 좋은 대안 문화공간으로 주목된다. 시민 발길이 끊겨 쇠락하던 광주 금남로 지하상가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제주 '빛의 벙커'나 '아르떼뮤지엄'처럼 관람객이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다.

대전도 비교적 넓은 면적을 가진 중앙로역과 대전역 등 지하철 역사 내 유휴공간이나 중앙로 지하의 빈 상가를 확보한다면 다양한 활용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대전발 0시 50분 열차'를 모티브로 한 '대전 0시 축제'는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까지 1㎞ 구간에서 펼치는 대형 퍼레이드 등 화려한 볼거리들로 벌써부터 큰 관심을 모은다. 이곳을 '대전 언더그라운드 문화플랫폼'으로 바꿔보면 어떠한가? 한국을 대표할 글로벌 축제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위대한 도시, 품격 있는 도시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다. 틀에 박힌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시민 삶 속에서 체험하고 향유 가능한 일상 속 예술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큰돈을 쓰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연을 하거나 전시할 장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지하철이 시민들의 '일상 속 문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면, 예술인들은 자신을 자유롭게 알리면서 시민들에게 즐거움도 줄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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