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기소에 가상자산 업계 긴장…테라·루나 증권성 판단땐 알트코인 줄상폐 가능성 [한강로 경제브리핑]

안승진 입력 2023. 3. 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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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도피 중이었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미국에서 증권사기 등 혐의로 기소되면서 가상자산 업계는 향후 법원의 판결에 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상자산은 일종의 상품으로 각종 제재를 피해갔으나 국내외 법원이 테라·루나를 증권으로 판단하면 상당수 알트코인(얼터너티브 코인)은 미등록 증권으로 규정돼 잇따른 상장폐지 위기를 겪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씨의 체포로 가상자산을 법적 테두리에 편입하는 논의도 활성화할 전망이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 24일(현지시각)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AP뉴시스
◆ “가상자산은 상품인가, 증권인가”

26일 업계에 따르면 권씨의 테라폼랩스는 2019년부터 달러와 일대일 가치를 갖는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와 그 가치를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루나를 발행했다. 그 과정에서 테라USD의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토큰을 양산했는데 특히 앵커프로토콜(ANC)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대규모 투자자를 유치했다. 앵커프로토콜은 달러 가치와 동일한 테라USD를 예치(스테이킹)하면 연 19% 수준의 이자를 지급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테라·루나 가격이 99% 폭락하면서 수많은 피해자가 속출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자들이 공동의 사업체에 투자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대로 투자에 나선 점을 들어 테라·루나를 무등록증권으로 판단해 법원에 제소했다. SEC는 최근 “모든 알트코인은 증권”이라고 주장하면서 가상자산 거래소와 스테이블 코인, 알트코인 등에 대한 제재를 잇따라 가하고 있다. 탈중앙화로 설계된 비트코인과 달리 많은 알트코인은 발행자가 특정돼 있고 테라·루나처럼 디파이(탈중앙화금융)를 비롯한 다양한 사업성을 갖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법원이 권씨의 재판과정에서 증권사기 혐의 등을 인정하면 알트코인은 무더기 상장폐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을 일종의 투기 상품으로 보고 자본시장법에 따른 제재를 가한 적이 없다. 국내 자본시장법상 증권은 ‘투자자가 공동사업에 금전을 투자하고 손익을 귀속 받는 계약상의 권리’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계약을 바라보는 기준에 따라 가상자산의 증권성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국회에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수년간 계류되면서 가상자산에 대한 기준 자체도 모호한 상태다. 검찰이 테라+루나를 증권으로 보고 권씨를 수사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는 아직 미비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법원은 권씨와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립한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이유 중 하나로 자본시장법 위반여부를 들었다. 법리상 다툼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5월 17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가상자산 '루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 권씨 체포에 테라·루나 수사 속도내는 당국

권씨에 대한 국내외 사법부 판단 관건은 가상자산을 어디까지 증권으로 보는지에 달린다. 지난 2년간 지속해온 SEC와 리플의 소송결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음 달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수많은 알트코인의 제재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투자상품 포괄주의는 금융시장의 원칙”이라며 “리플에 대한 미국 법원의 판결은 국내에 법적구속력은 없지만 굉장한 참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가장자산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비해 국내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의 증권성 범위를 좁게 보고 있다”며 “국내 미칠 영향도 아직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권씨의 체포소식 후 테라·루나 사태에 대한 수사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24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차이코퍼레이션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권씨의 동업자인 신 전 대표가 테라·루나 블록체인을 차이 결제 시스템에 탑재하겠다고 거짓 홍보해 벤처투자회사들로부터 1400억원 상당의 투자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사들은 테라·루나 폭락에 따라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 지원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따져보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토큰증권(ST) 도입으로 가상자산의 증권성과 제도권 편입 논의도 활발해진 상황이다.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가 모인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닥사·DAXA)는 지난 21일 공통 거래지원심사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며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심사 항목으로 뒀다. 증권성이 있는 가상자산은 스스로 상장폐지하겠다는 의미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3600만원대의 비트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
◆ 다음 달 가상자산 시장 전망은?

규제 리스크에도 비트코인 가격은 2만7000달러에서 2만8000달러 사이를 오가고 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23일 2만8716달러로 올라선 비트코인은 26일 오후 5시30분 기준 2만7520달러 수준으로 약간의 조정을 받았다. 올해 초 1만6000달러대와 비교하면 75%가량 급등한 수준이다.

업계는 다음 달 가상화폐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리플 소송 결과를 비롯해 이더리움의 상하이 업그레이드, 마운트곡스 보상 등 가상자산 시장의 악재를 내다봤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SEC와 리플사의 소송”이라며 “리플 소송의 결과 예측은 어려운 상황이며 암호화폐 역사상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꼽혀온 소송이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21일에는 이더리움의 상하이 업그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이더리움의 스테이킹 출금을 가능하게 하는 업그레이드인데 이를 통해 1650만개의 이더리움이 시장에 매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14년 85만개의 비트코인 해킹이 발생해 파산한 일본 마운트곡스 거래소의 채권자들의 변제도 4월에 예정됐다. 이들은 비트코인으로 상환을 받을 예정인데 이 물량이 차익실현 매물로 나오면 비트코인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오 연구원은 “일본 마운트곡스 거래소의 채권자들에게 비트코인 13만7000개를 지급 개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급받은 채권자들의 일시 매도 우려가 시장에 악재로 작용 중”이라며 “비트코인 13만7000개는 하루 유통량의 8% 수준으로 크다”고 지적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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