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생물 공장 망치는 바이러스, 설계도 바꿔 막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3. 2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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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바이오연료 만드는 미생물 공장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 공격에 생산 차질
미 연구진, 단백질 합성경로 바꿔 차단
바이러스 침입해도 복제 못 하고 사멸
대장균에 침투하는 파지 바이러스(녹색) 상상도. 우주선처럼 생긴 박테리오파지는 대장균에 달라붙은 다음 표면에 구멍을 내고 자신의 유전자를 안으로 집어넣는다. 삽입된 유전자는 병원균의 복제 효소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복제한다. 복제된 바이러스들은 세포막을 찢고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세포막에 구멍이 난 대장균은 죽는다./PATRICK LANDMANN/SCIENCE PHOTO LIBRARY

인간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는 사이, 대장균도 공장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다. 대장균 유전자를 바꾸면 인슐린과 같은 바이오 의약품이나 바이오 디젤 같은 청정연료를 발효 공정으로 생산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 감염은 대장균을 죽이거나 생합성 능력을 떨어드려 생물 공장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과학자들의 대장균의 단백질 합성 경로를 바꿔 원하는 물질은 그대로 생산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못하게 원천 차단하는 길을 열었다. 생물공장의 대장균이 밖으로 유출돼도 공장이 아닌 자연조건에서는 살 수 없어 생태계 교란 가능성도 막았다.

◇생물공장 설계도 바꿔 바이러스 차단

미국 하버드 의대의 조지 처치(George Church) 교수 연구진은 지난 1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대장균의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운반리보핵산(tRNA)을 바꿔 바이러스 저항성을 가지는 균주를 만들었다”고 발혔다.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이다. 1917년 프랑스 미생물학자 펠릭스 데렐이 그리스어로 ‘박테리아를 먹는다’는 뜻에서 지금의 이름을 붙였다. 줄여서 파지(phage)’라고 한다. 최근 대장균에 유용 유전자를 넣어 바이오 의약품이나 화학산업의 원료, 청정연료를 생합성하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 크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파지 바이러스가 발목을 잡고 있다.

DNA의 유전정보는 전령리보핵산(mRNA, 녹색)에 복제된다. mRNA의 유전정보는 순서대로 염기 세 개씩 짝을 지어 코돈이 된다. 운반리보핵산(tRNA, 노란색)은 코돈에 따라 각각 다른 아미노산(붉은색)을 연결해 단백질을 합성한다./위키미디어

하버드 연구진은 대장균의 단백질 합성 경로를 수정해 바이러스가 침입해도 자신을 복제하지 못하도록 했다. 바이러스는 대장균 유전자에 자신의 유전정보를 끼워 넣고 복제한다. 이를테면 남의 공장 기계에 원료를 집어넣고 제품을 공짜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하버드 연구진은 공장 설계도를 바꿔 이런 도둑 생산을 차단했다.

유전물질인 DNA는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 등 네 가지 염기로 구성된다. 이 염기들이 배열된 순서에 따라 아미노산들이 연결돼 모든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DNA의 염기들은 세 개씩 짝을 지어 각각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한다. 바로 코돈(codon)이다.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은 모두 20종인데, 염기 3개의 짝은 기능이 겹치는 것들이 많아 코돈은 모두 64개다.

연구진은 대장균에서 세린이라는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코돈 두 개를 삭제했다. tRNA는 코돈의 유전정보에 따라 아미노산을 가져와 연결한다. 하버드 연구진은 tRNA까지 변형해 세린 코돈을 보면 류신이라는 다른 아미노산을 가져오도록 했다.

이제 바이러스가 침입해 자신의 유전정보를 대장균에 끼워 넣어도 세린 대신 류신 아미노산이 연결돼 제대로 복제를 할 수 없다. 설계도가 바뀌어 남의 공장 기계에 몰래 원료를 넣어도 제품이 엉망이 되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10년 동안 바이러스 막는 연구 발전

파지 바이러스감염을 차단하는 연구 경쟁은 2013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부터 시작됐다. 처치 교수 연구진은 단백질 합성을 멈추게 하는 코돈을 바꿨다. 동시에 tRNA도 바꿔 정지 코돈을 읽으면 다른 아미노산을 연결해 바이러스 단백질 합성을 망치도록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제이슨 친(Jason Chin) 교수는 2019년 대장균의 코돈 64개를 61개로 줄인 균주를 만들었다. 바이러스가 침입해도 코돈이 3개가 없어 제대로 복제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어 2021년에는 정지 코돈, 세린 코돈을 바꾸고, 원래 세린 코돈을 인식하는 tRNA는 없앴다. 그래도 돼지우리나 닭장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대장균에 감염됐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지난해 세린 tRNA를 없애지 않고 세린 대신 프롤린과 알라닌을 가져오도록 바꿔 바이러스의 단백질 합성이 더 엉망이 되도록 했다.

하버드 연구진은 지난해 케임브리지대의 연구를 발전시킨 것이다. 실험 결과 하버드 의대 캠퍼스 주변이나 하수구, 닭장, 쥐 서식지 등에서 채집한 바이러스가 케임브리지대가 만든 대장균 균주는 감염시키지만, 이번에 만든 하버드대의 균주는 건드리지 못했다. 논문 제1 저자인 아코스 니에게스 박사는 “완벽한 바이러스 저항 균주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험에서 아직 바이러스가 감염된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대장균에 결합한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녹색)의 전자현미경 사진. 파지는 대장균 안에서 증식한 다음 밖으로 나오면서 대장균을 죽인다/Eye of Science

하버드 연구진은 바이러스 감염과 함께 유전자 변형 대장균이 자연으로 유출돼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도 차단했다. 연구진은 생물 공장의 대장균이 자연에 없는 인공 아미노산을 이용하도록 만들었다.

대장균은 생물 공장에서 인공 아미노산으로 인슐린을 합성할 수 있지만, 자연으로 유출되면 해당 인공 아미노산이 공급되지 않아 단백질을 합성하지 못하고 죽는다. 연구진은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가 유전자를 변형한 박테리아에 감염될 위험이 없다”고 밝혔다.

◇바이러스 저항 유전자, 자살 단백질도 찾아

이상엽 카이스트(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는 “이번에 하버드 연구진은 단백질 합성 경로를 바꿔 파지가 침입해도 복제를 못 하게 하는 한편, 대장균이 밖으로 유출돼도 자연에서 살지 못하게 해 바이러스 감염과 생태계 교란을 둘 다 원천 차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파지 바이러스가 이런 방어막을 뚫을 정도로 빠르게 대규모 변이를 일으키기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며 “파지 저항 균주를 만든 다양한 방법을 동시에 쓰면 더 강력한 방어막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이상엽 교수 연구진은 대장균에 방어 유전자를 넣어 파지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KAIST

파지 저항성 대장균은 다른 방법으로도 개발됐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마이클 롭(Michael Laub)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네이처에 파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대장균이 스스로 죽는 프로그램을 작동한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바이러스도 사멸된다.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다면 같이 죽어 동료를 살린다는 것이다.

MIT 연구진은 대장균의 CapRel 단백질이 바이러스의 껍질 단백질을 감지하면 독소를 방출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면 대장균의 단백질 합성이 멈춘다. 이 단백질은 대장균과 바이러스 둘 다 생존에 필수적이다. 결국 바이러스와 감염된 대장균 모두 죽는다. 연구진은 대장균의 동반 자살 원리를 이용하면 바이러스가 침입해도 대장균 중 일부만 희생하고 전체는 살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파지 저항성 대장균 균주가 개발됐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파지 방어 유전자를 가진 대장균 균주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외가닥 DNA 인산황화 유전자, 즉 Sap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고 파지와 함께 배양했다. 대장균은 생장속도와 생리학적 특성이 이전과 같았다. 파지가 아무리 많아도 화학물질이나 단백질 생산 능력을 유지했다. 이 교수는 “다양한 파지 저항성 대장균을 활용하면 미생물 기반의 유용 화학제품 생산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2023), DOI : https://doi.org/10.1038/s41586-023-05824-z

Nature Communications(2022),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2-31934-9

Nature(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5444-z

Science(2022),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d8943

Science(2021),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g3029

Science(201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124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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